분리배출을 어렵게 만드는 건 국민이 아니라 제도다. 국민에게 시험지를 들이밀며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고민 없이도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재활용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최근 재활용 심볼 체계가 소재 중심의 기호 위주에서 심볼 색상을 더해 개선되었다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를 보거나 인지하고 행동하는 소비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이 분리배출 표시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환경공단 간 분담금 정산용 장치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에게는 ‘더 복잡해진 낙인’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째, 고령사회와 취약계층 배려 부족이다. 작은 글씨와 복잡한 표시를 읽기 어려운 노인, 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을 고려한 설계인가.

둘째, 분담금에 관한 문제로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가격에 포함돼 결국 소비자가 ‘분리배출 봉투값과 분담금 전가’라는 이중부담을 떠안고 있지 않은가.

셋째, 생산자책임의 실질적 이행 부족으로 친환경 포장재는 외면당하고, 기존 관성적 포장재 생산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넷째, 전국 인구의 상당수는 단독주택·농촌·소규모 건물에 살지만, 분리배출 정책은 아파트 단지를 기준으로 짜여 있지 않은가.

다섯째, 소비자 교육을 통한 한계점에서 생산자에게 친환경 설계와 재활용 용이성 기준을 철저히 교육·규제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구조적 문제의 결과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긴 제도다. 결국 국민에게 남는 건 복잡한 심볼과 더 무거워진 봉투값 뿐이다. 아래 그림은 2021. 07. 09부터 새롭게 적용하는 기준이다.

분리배출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국민의 생활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재활용 심볼은 소재 코드 중심(예: PP, PE, PET)으로 설계돼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QR코드나 작은 글씨는 오히려 고령층·취약계층에게 장벽이 된다. 심볼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공제조합의 ‘분담금 정산용’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과 생산자의 ‘책임회피’에 소비자는 ‘맹목적 참여’

분리배출 심볼이 아홉 가지 색상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사실 국민 대다수는 어느 것이 플라스틱인지 안다. 그럼에도 정책은 플라스틱을 알 수 없는 HDPE, LDPE와 여기에 아홉 가지 색상 체계를 덧씌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정책은 국민이 더 세세한 정보를 알면 올바른 분리배출을 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결국 아홉 가지 색상 체계는 국민을 돕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의 재활용 제도는 소비자 편의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실상 생산자와 공제조합 간 분담금 정산 체계를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책자는 세세한 심볼과 글씨를 보며 분류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사이에 ‘소비자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교육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수천만 소비자에게 일일이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오히려 그 비용으로 소수의 생산자 교육을 통한 설계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