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고,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시대를 꽃피게 한다.
이 시대를 표현하는 중심은 단연코 AX다.
AX시대를 헤쳐 갈, 아니 기회로 활용하여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할 새로운 경영언어로서 ‘더 좋음’을 생각한다.
AX시대와 언어의 힘
AX(AI대전환)를 말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건, 이 시대가 AX시대임을 증거한다. 챗봇의 일반화로 거의 모두가 AI의 효능을 체감하면서 AX는 이제 거슬릴 수 없는 이 시대의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아 정부는 AI경제로의 전환을 정책적으로 밀고 있고 개인은 자신의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다. 불안이란 부정적 감정이다. 그래서 소모적이다. 특히 경영에서 불안은 매우 좋지 않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불안을 잠재우고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왜 혁신이 아니고 언어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언어는 힘이 세다고 두 사람의 철학자가 말한다. 실존철학자인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하고, 20세기 최고의 분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1889~1951) 교수는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다”라고 한다. 이는 언어를 바꾸지 않으면 혁신도 없고 새로운 세상도 열리지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산업혁명을 기술혁명으로 알고 있지만 자유, 평등, 행복과 같은 근대언어가 만들어낸 대전환이라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AX시대를 맞아 불안을 잠재우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언어가 무엇이 있을까? 국내외로 격동의 2025년을 넘기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언어가 긴요하게 필요하여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매우 중요하다. 답을 찾으려 AX시대를 맞아 어떤 새로운 언어가 있는지 알아보려 레거시 미디어를 자세히 보았다. 혁신, 제도개혁, 교육개혁, 실용외교 등등 죄다 거대담론(big talk)이다. 늘 들어왔던 익숙한 언어라 새롭지 않았다. 이런 익숙한 언어로는 AX시대를 헤쳐 가기 어렵다. 그래서 눈을 경영현장으로 돌려서 어떤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경영현장에서 찾은 ‘더 좋음’
AX시대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왜 경영현장에서 찾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대흐름에 가장 민감한 곳이 경영현장이기 때문이다. 정부정책, 제도, 학문적 연구보다 경영의 시대민감성은 날이 서있다. 이유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렸기 때문에 시대흐름에 더 민감하고 그 결과 새로운 경영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AX시대를 맞아 경영현장에서 어떤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고 있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상권이 가장 좋다는 잠실 롯데월드 벽면에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가 엄청 큰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종로3가에서 5호선을 타려는데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활명수를 만드는 회사에서 ‘배러(better의 영어발음)’란 음료를 출시하였다는 광고판을 보게 되었다. 3호선 매봉역에서 롯데시네마 쪽으로 가는 길목에 어느 프랜차이즈 피자전문점의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베터 인그리디언트 베터 피자(Better Ingredients, Better Pizza).” 이러한 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웬 베터?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더 잘 하자는 얘긴가 아니면 배터를 배려로 해석하는지 등을 생각하는데 한국마케팅학회(회장 박성연)에서 연락이 왔다. ‘더 나은 미래’로 조찬세미나를 하니 오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학회에서는 이런 언어는 좀체 쓰지 않는다. 싸늘하게 객관적인 자료만 분석하지 미래를 디자인하는 이런 언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더 나은’ 이란 언어를 쓰는지 궁금했고 찾게 된 것이 세계적 학술지인 JOM(Journal of Marketing)의 2021년 특별 호다. 특별호의 주제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더 좋은 마케팅(BMBW; better marketing for a better world)”이었다. 기존의 마케팅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주장이 담겨있는데, 1900년 이후 한 세기 넘게 기업의 효율적인 이익추구를 위해 봉사해온 마케팅이 이제는 세상의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케팅이 환경과 사회에 끼친 외부효과를 반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분명 코로나19의 영향일 것이다. 싸늘한 학문에서도 더 좋음, 더 나음이란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바로 재앙인 코로나의 영향인 것이다.코로나 이후 나타난 더 좋음이 AX시대를 맞아 비즈니스현장에서 쓰이고 있다는 건 새로운 언어로서 의미가 큼을 증거한다. 그래서 ‘더 좋음’을 AX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경영언어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경영언어로서 더 좋음을 논의하기에 앞서 단어표기를 분명히 한다.
베터와 베터니스
처음 베터를 대할 때는 별 생각이 없다가 이를 AX시대의 새로운 경영언어로 보려하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더 좋음 혹은 더 나음의 영어표기가 베터(better)인지 베터니스(betterness)인지부터가 헷갈렸다. 베터는 비교격이지만 베터니스는 명사라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비교격으로서 더 좋음을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좋음은 나쁨과 이항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따라야 할 도덕률로 우리의 삶을 계도하는 지침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좋음(선)과 나쁨(악)의 이항대립적 나눔은 어디에나 있다. 좋은 사람 대 나쁜 사람, 좋은 기업 대 나쁜 기업, 좋은 친구 대 나쁜 친구 등으로 도덕률이 정해진다. 사실 이 경우 좋음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적이나 경쟁자를 나쁨으로 규정할 수 있고, 자신의 고집이나 극한적 이기심까지도 좋음으로 포장할 수 있는 아전인수(我田引水)적 도덕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더 좋음이 나쁨을 전제로 하는 도덕률이라면 여기서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 인류사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점철되었을 정도로 이항대립적 비교는 인류사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좋음’은 비교격이 아니라 명사로서 베터니스로 쓴다. 우리말 번역은 더 좋음과 더 나음 두 가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존 것보다 더 좋다는 의미도 포함하지만 좀 더 좋은 것, 좀 더 나은 것을 향한 에로스(eros)를 말한다. 에로스는 이상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이 ‘더 좋음’이다. 헷갈릴 것 같아서 정리한다. 더 좋음은 지금도 좋지만 더 잘하자는 비교격이 아니다. 더 좋음은 이상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명사다. 무엇이 어떤 것이 더 좋음인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하지만 그래도 경영언어로서 힘을 가지려면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더 좋음 경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