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툰베리’로 불리는 청소년 환경운동가 니나. 오마이어스
인도네시아 출신의 환경 인플루언서이자 국제 기후행동가로 활동하는 애쉬니나 아자흐라 아킬라니(활동명 니나)는 2007년생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이미 여러 국제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과 폐기물 불평등 문제를 직접 발언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이런 활동의 출발점은 집 근처 강가에서 마주한 풍경이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물길을 본 그는 ‘이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에서 왔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 상당수 쓰레기가 해외에서 유입된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 이후 니나는 행동에 나섰다. 단 한 장의 편지로 세계를 향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 목소리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며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식민주의’ 문제를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작은 행동이 구조를 바꾼다”
국제 언론이 니나를 ‘아시아의 툰베리’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나이에 국제 환경 의제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열다섯에 환경운동에 뛰어든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2)에 비견되는 영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니나는 11월 초 국내 기후행동문화기업 ‘오마이어스(Oh My Earth)’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아 제주 지역 청소년들과 환경보호 활동을 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11월 4일에는 ‘신동아’가 주최한 ‘제9회 사회적가치 포럼’에 특별연사로 참가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에서 목격한 환경 의식과 기술 수준에 감탄했다는 그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협력한다면 동남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기후행동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중순 ‘신동아’는 니나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환경운동 철학,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열두살이던 2019년 집 근처 강을 산책하다가 강변이 미국에서 수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광경을 보게 됐어요. 당시 인도네시아는 재활용 명목으로 선진국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거든요. 단순히 어지럽다거나 더럽다는 느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왜 다른 나라의 쓰레기까지 떠안아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죠.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쓰레기 처리가 늘 문제였고, 정부 시스템도 허술했거든요. 그런데 강가에서 본 쓰레기 더미에는 외국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것이 너무 많았어요. 그때 이 상황은 단순한 ‘환경 미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불평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 중단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어요. 놀랍게도 두 달 뒤 미국 측에서 답장이 왔고, 그 일은 국제 언론에도 보도되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플라스틱 수입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작은 행동이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배웠습니다.”
니나는 이와 관련해 “2021년 미국산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어린아이였기에 더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어른이었다면 망설였을 행동을 그는 단순한 분노와 정의감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이 경험은 그에게 ‘행동하면 바뀐다’는 신념을 심어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비·생산 시스템 바꿔야 할 때
세계가 직면한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이 문제의 핵심은 과소비와 편리함에 대한 중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너무 많이, 그것도 너무 쉽게 만들어요.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천 감축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요. 포장을 바꾸고, 리필·재사용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업이 책임 있게 생산하도록 압박해야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일회용품 거절하기, 지역 커뮤니티 활동 참여하기, 내 실천을 주변에 자연스럽게 확산시키기 같은 사소한 행동이지만 사회의 변화는 이런 ‘작은 운동성’(작지만 지속 가능한 행동의 흐름)에서 출발한다고 믿어요.”
니나는 특히 “플라스틱 문제는 곧 기후 문제”라고 강조한다. 플라스틱은 석유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생산·유통·소각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가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 청소년 워크숍을 운영하며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도 “플라스틱 위기는 해양쓰레기 문제가 아니라 기후 위기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활동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강연을 마친 후 한 소녀가 저에게 와서 ‘언니 덕분에 저도 환경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말한 순간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감격스러웠어요. 환경운동은 그저 강을 치우고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첫 행동’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제가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작은 씨앗이 되어 다른 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무척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는 “변화는 대체로 느리고 답답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첫걸음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보게 되면 모든 회의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가장 힘든 순간도 겪었겠죠.
“가장 힘든 건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찾아올 때예요. 변화는 너무 느리고 때로는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어 보일 때도 있거든요. 그런 순간에는 쉽게 지치고 스스로가 작아진다는 느낌도 들어요. 하지만 결국 초심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저는 칭찬을 받으려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구를 사랑해서 시작한 거잖아요. 그리고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하지 않아요. 이 활동을 하며 공동체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쉬는 것도 용기라고요.”
그는 “기후운동이야말로 멘털 관리가 필요한 활동”이라며 웃었지만 그 말에는 오랜 시간 쌓인 진심과 현실적인 고충이 묻어 있었다.
韓 기술·시민의식이 인니와 만나면 더 큰 변화 가능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뭔가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와 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미비입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플라스틱이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사례가 정말 많아요. 제 주변에서는 종종 ‘쓰레기 수거차가 오지 않아 집 앞에 쌓아둔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실천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청소년 대상 워크숍에서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캠페인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습관화를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빠른 도시화, 인프라의 불균형, 지역 간 불평등 등을 배경 문제로 지적하며 “기후 위기는 늘 사회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방문을 통해 본 환경 인식은 어땠나요. 인도네시아와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한국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정말 많은 분이 환경문제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청소년부터 직장인, 예술가, 공무원까지 활동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더라고요. 또 한국은 기술과 제도, 인프라가 아주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고, 분리수거와 재활용 시스템이 현실에서 잘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연보호와 관광 관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인도네시아도 인식은 많이 높아졌지만 정책 실행력과 기반 시설의 완성도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여요. 한국의 경험이 인도네시아에 적절히 적용된다면 아시아 지역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기술력과 환경 의식이 뛰어나고, 인도네시아는 청년 에너지와 현장성이 강해요. 두 나라가 만나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세대와 함께 어떤 기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나요.
“세대 간 협력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시민단체, 여성 그룹, 청소년 커뮤니티가 함께 참여하는 환경오염 조사 프로젝트는 과학·교육·커뮤니티를 연결할 수 있는 좋은 방식입니다. 또 매달 기후 팟캐스트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열어 전문가와 함께 최신 이슈를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청년들이 참여하면 리워드가 주어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캠페인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기후행동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드는 거예요.”
문화 기반 기후행동의 가능성
그는 장기적으로 한국·인도네시아·동남아 청년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청년 기후 네트워크’를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기술·데이터·지역 문제 해결 경험을 공유하며 실제 변화를 만드는 글로벌 조직을 구상하고 있다.
K-컬처는 기후행동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K-팝과 K-콘텐츠는 전 세계적 영향력이 있어요. 기후 문제는 종종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데, 음악이나 영상 같은 문화콘텐츠는 사람의 감정에 직접 닿기 때문에 메시지가 훨씬 빠르고 넓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이 K-컬처의 서사나 패션, 뮤직비디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기후행동은 ‘책임’이 아니라 ‘문화’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이 진행한 설문조사를 언급하며 “Z세대의 60% 이상이 글로벌 플라스틱 조약을 모른다”고 설명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K-팝 아티스트가 환경 메시지를 담은 곡을 내거나 K-드라마가 기후 문제를 드라마 서사 안에 녹여내고, 한국 크리에이터가 기후 캠페인을 시작한다면 그 메시지는 전 세계로 퍼질 겁니다. 정책 보고서보다 노래 한 곡이 더 많은 사람을 움직이기도 해요. 오마이어스가 이런 ‘문화 기반 기후행동’을 시도하고 있어 기대가 큽니다.”
국내 기후행동문화기업 오마이어스(Oh My Earth)와 협력관계를 맺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 협력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기후 위기는 어느 한 나라가 혼자 해결할 수 없어요. 인도네시아는 폐기물, 기후 변화, 불법 수출 플라스틱 문제를 겪고 있고, 한국은 환경 기술과 시민참여 문화가 뛰어나죠. 저는 두 나라가 함께 동남아 전체를 위한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마이어스는 문화를 기반으로 기후행동을 만드는 기업이라 방식도 무척 창의적이고요.”
그는 이번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파트너십, 국제 청년 기후 플랫폼, K-컬처 기반 글로벌 캠페인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국 청소년과 독자에게 제안하고 싶은 작은 실천이 있다면.
“기후행동은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항상 네 가지 단계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알아가기(literacy)’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 동네 강, 생활 속 쓰레기부터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에요. 둘째는 ‘참여(participation)’입니다. 청소 캠페인이나 포럼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시작됩니다. 셋째는 ‘실천(action)’이에요. 알고만 있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요. 네 번째는 ‘협력(collaboration)’입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어요. 친구들, 학교, 시민단체, 기업, 정부와 협력해야 진짜 변화가 생깁니다. 한국은 높은 환경 의식과 기술, 그리고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K-문화가 있어요. 여러분의 작은 실천이 다른 나라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결국 아시아 전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변화는 늘 지금, 가장 작은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