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화 '빅쇼트(Big Short)'로 유명한 사이언 자산운용의 마이클 버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들이 칩과 서버의 수명을 실제보다 길게 계산하여 감가상각 비용을 줄여 인위적으로 수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 칩과 서버를 2~3년 주기로 대규모로 구매하면서도 사용 가능 기간을 길게 연장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부풀려 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고가의 자산을 구매할 경우 자산의 예상 수명에 따라 비용을 분산해 감가상각 처리한다. 자산의 수명을 길게 잡을수록 연간 감가상각 비용은 줄어들고 기업의 순이익은 늘어나게 된다. 버리는 오라클과 메타를 지목하며 2028년까지 이들 기업의 수익이 각각 약 27%, 21% 과대 계상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버리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공매도(Short)를 걸어 천문학적 수익을 얻고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AI 열풍이 1990년대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경고하며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했다. 9월 말 기준으로 엔비디아에 대해 1억 8700만 달러, 팔란티어에 대해 9억 1200만 달러 규모의 풋옵션(Put Option)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퍼스케일러는 대규모의 컴퓨팅 성능과 스토리지 용량을 전 세계 기업과 개인에게 제공하는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를 의미한다. 수백만 명에서 수십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 요구에 원활하게 대응하도록 설계된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며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컴퓨팅 성장의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기업들이 자체 하드웨어 구축 없이 필요한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킹 등의 인프라(IaaS)와 애플리케이션 개발 플랫폼(PaaS)을 빌려 쓸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인프라를 제공하며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는 AI 산업의 '토양'이자 '혈관' 역할을 하며 AI 기업은 그 토양 위에서 성장하는 '열매'와 같다. 이들은 서로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가 AI 모델 학습 및 서비스 운영에 필수적인 고성능 컴퓨팅 자원(특히 GPU, 메모리)을 클라우드 형태로 제공하면 AI 기업들은 자체적인 대규모 데이터 센터 없이 효율적으로 혁신적인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다.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는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 구글(GCP), 알리바바, IBM, 오라클 클라우드 등이 있다.
아마존은 미국 내에서 꾸준히 데이터 센터 설립 투자와 AI 사업 확장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올해 초 조지아주에 투자한 110억 달러를 포함 금년에만 105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MS도 클라우드 및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전년 대비 74% 증가한 8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구글은 2025년 자본지출 전망치를 910억~93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2024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메타 역시 66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오라클은 텍사스에 들어설 오픈AI의 데이터 센터에 400억 달러를 포함하여 2030년까지 3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에 대해 일각에서는 '딥시크 쇼크'에 놀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더 공격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저비용 고효율'을 강점으로 내세운 중국의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의 AI와 견줄만한 AI를 개발해 엔비디아 반도체 수요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공격적 자본지출은 투자자들의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거액의 투자가 수익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과잉 투자와 감가상각 부담으로 리스크가 커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그동안 막대한 현금흐름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설비투자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최근 AI 경쟁이 격화되면서 투자비용이 급증하자 채권 발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높은 신용도 덕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투자의 핵심 자금원이 점점 더 채권시장으로 넘어가면서 AI 인프라 투자를 부채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기업의 자금조달 구조가 채권 중심으로 기울고 있는 데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AI 기업들에 대한 거품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버블 붕괴 시 대량의 부실채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퍼스케일러는 현재 약 3500억 달러의 현금과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7250억 달러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에만 무려 2000억 달러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 570억 달러, 알파벳 250억 달러, 오라클 180억 달러 등이다.
AI 거품 우려 속에 빅테크들이 발행한 회사채 수익률이 뛰고 있다. AI 투자가 제대로 수익을 낼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높아지자 투자자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이들 빅테크에 더 높은 금리(수익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AI의 핵심 인프라인 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발행한 회사채 수익률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들어 투자자들이 빅테크기업의 채권을 매도하고 있다며 이는 'AI 과잉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채권 시장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스프레드(미국 국채 대비 추가 수익률)는 0.78%포인트까지 상승한 점을 주목했다. 지난 9월 0.5%포인트에서 크게 뛴 것으로, 빅테크가 AI 설비 투자를 위해 차입을 늘리면서 시장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퍼스케일러인 코어위브의 주가가 최근 4개월 간 57%나 급락하면서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급등했다. 데이터센터 확충을 위해 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 금리 상승이나 경기 둔화 시 재무 건전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에 대한 경쟁적 투자가 지속될 거라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간 더 많은 회사채 발행과 시장 변동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만일 AI 버블이 꺼지면서 부실채권이 급증한다면 금융시스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규제와 공시 의무가 거의 없는 회사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 추가 발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의 상승은 시장의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주가의 상승이 이어지는 랠리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과 분석가들 사이에서 현재의 AI 투자 열풍이 지속 가능한 성장인지, 언젠가 터질 거품인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한 이유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경쟁적 투자는 한국 반도체, ICT 산업 관점에서 양면성을 띄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및 서버용 프로세서, AI 가속기 설비를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인프라 확대 수혜가 기대되는 반면, 동시에 투자 과열과 글로벌 설비경쟁 심화, 감가상각 부담 증가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서버나 AI 가속기 수요가 예상만큼 빠르게 매출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가격 인하 압력이나 가동률 하락으로 투자 리스크가 증가할 수 있다. 또한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설비·칩 제작 역량을 강화할 경우 한국 기업은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초대형 투자가 수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포착하면서도 설비 과잉, 비용 증가, 시장 기대 부응 실패라는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주가는 커다란 변동성을 보였지만 상당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제는 주가에 걸맞은 실적을 보여줘야 할 때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5279476?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