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기업 경영진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AI를 도입하면 정말 성과가 나는가?”
아쉽게도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AI를 도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생산성 향상이나 성장 엔진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과 조직의 준비 부족’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전 세계 1250여개 기업의 최고경영진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기업이 AI를 실험하고 있지만 그중 60%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40%만이 투자 대비 가치를 창출했고, 상위 5% 기업만이 매출·총주주수익률·이익률 등 주요 지표에서 실질적 개선을 보였다.
왜 이처럼 많은 기업이 AI 전환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BCG는 AI 전환의 성공 요인 중 70%가 기술이 아니라 사람·프로세스·조직 문화에 있다고 설명한다(10% 기술, 20% 데이터·시스템, 70% 사람·운영·문화). 기업이 혁신을 위해 AI 기술을 도입하고 로드맵을 만들어 시스템 투자를 확대해도, 실제 실행 단계에서 사람 중심 장애물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AI 전환의 3가지 장애물
AI 전환의 첫 번째 장애물은 내부 전문성의 부족이다. 많은 기업이 경쟁적으로 AI 설루션을 도입하고 있지만, 기술의 특성과 조직 운영의 맥락을 파악해 적용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AI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지’ 판단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이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기본적인 AI 도구 활용도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최근 해외 한 금융기관이 AI 기반 코딩 자동화를 도입했는데, 최고 성과자는 생산성이 몇 배로 높아졌지만 중·하위 성과자들은 도구 사용 경험이 부족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도록 돕는 적절한 교육·전사적 지원 체계 등 조직적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직원의 불안과 저항이다. AI가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우려, 새로운 도구를 익혀야 한다는 부담, 평가 방식이 바뀔 것에 대한 걱정은 AI 도입 속도를 늦춘다. BCG 분석에 따르면 직원들은 AI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사용률은 낮은 ‘AI 채택의 역설(AI Adoption Paradox)’이 존재한다.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장벽과 신뢰 부족의 문제다.
세 번째 장애물은 HR 조직의 준비 시간 부족이다. AI 도입은 특정 기능을 넘어 전사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바꾸며, 채용·배치·교육·직무 정의·커리어 패스 등 모든 HR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기업의 HR 조직은 기술 변화 속도에 아직 대응하지 못했지만, 미국 주요 테크 기업은 반복 업무가 줄어들면서 채용과 직무 구조를 역량 중심으로 재조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입 인력이 갖춰야 할 기술·데이터 역량 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학과 기업 협력, 전사 재교육, 직원 역량 강화 체계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HR은 AI 시대의 인력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전환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HR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때 비로소 조직은 안정적으로 AI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3가지 AI와 사람의 상호작용 모델
기업 입장에서 AI를 단순히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은 각 업무에 가장 적합한 ‘AI-사람 상호작용 모델’을 정하고, 변화 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 BCG는 이를 일반적으로 세 가지 모델로 구분한다.
첫째는 AI 단순 지원 단계(Human with AI Tool) 모델이다. 직원이 AI를 도구로 사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모델로, 사내 GPT 도입, 문서 작성 자동화, 검색 보조 등이 대표적 사례다. 비교적 도입이 빠르고 저항이 낮아 전사 확산의 출발점으로 적합하다. 이 단계에서 직원들은 AI로 인해 반복 업무가 줄어들기 때문에 긍정적 경험을 빠르게 체감할 수 있다.
둘째는 AI 기반 역량 증강(AI-Augmented Human) 모델이다. AI가 업무 프로세스 전체의 중심에 서고, 사람은 최종 판단과 의사 결정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금융 사기 탐지 업무에서 AI가 의심 거래를 선별하고 사람이 최종 판단을 내리거나 마케팅에서 AI가 생성, 예산 배분 제안을 담당하고, 관리자가 이를 검증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례 등이다. 즉 인간의 역할은 가치가 가장 큰 핵심 의사 결정 및 판단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모델은 업무 혁신 효과가 크지만 섬세한 워크 플로우 재설계가 필요하며, 사람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재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다.
셋째는 AI 중심 자동화(AI-First) 모델이다. 사실상 업무의 대부분을 AI가 수행하고, 사람은 예외 상황에만 개입하는 구조다. 예컨대 인사팀 채용 프로세스에서 AI가 이력서 분석, 인터뷰 실행, 합격자 추천까지 완료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다만 이 경우 기존 인력의 대규모 재배치가 필요해 변화 관리 난도가 매우 높으며, 전사 관점의 인력 재배치 플랜이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AI전환을 위한 인사·조직의 핵심 과제
기업은 각 업무가 3가지 AI-사람 상호작용 모델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진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변화 관리·직무 재설계·역량 강화 전략을 다르게 취해야 한다. AI 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음의 인사·조직 관점의 체계적 준비가 필수적이다.
1. 역량 격차(Talent Gap) 분석과 인재 재배치 전략
AI 도입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 기업 내 역할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어떤 역할이 강화되고, 어떤 업무가 축소되며, 어떤 새로운 직무가 등장하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은 조직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역량 재정비의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기업 내에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 명확히 정의하고 중장기 인력 전략을 마련해야 구성원들이 변화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이러한 준비가 뒷받침되면, 직원들은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새로운 역할을 위한 성장 경로를 확인하며 AI 전환에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2. 전사적 재교육(Upskilling) 체계 구축
AI 시대에는 모든 직무가 일정 수준의 데이터·AI 활용 역량을 요구한다. 이미 아마존이나 JP모건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전 직원 대상의 AI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3. 상호작용 모델별 맞춤형 변화관리
단순히 툴 사용법을 교육하는 수준을 넘어, 업무 방식, 협업 방식, 더 나아가 평가 체계까지 바뀌어야 한다. AI가 어떤 역할을 맡고, 사람은 어떤 의사결정을 담당할지 명확히 구분해야 조직 전체가 혼란 없이 새로운 프로세스에 적응할 수 있다.
4. 직원과의 신뢰 형성
새로운 기술은 항상 불안을 동반한다. AI가 자신을 대체하지는 않을지, 새로운 도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은 변화 속도를 늦춘다. 따라서 조직은 직원에게 “AI가 당신의 역할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 기반의 소통이 확보될 때, 직원들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AI는 분명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지만, 그 잠재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사람과 조직의 준비도에 달려 있다. 기술만으로는 변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구성원이 새로운 업무 방식을 이해하고, 조직이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를 갖출 때 AI는 비로소 혁신의 동력이 된다. AI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기업이 사람을 중심에 둔 전환 전략을 세우고 직원들이 AI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AI 도입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조직 경쟁력을 높이는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AI의 골든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