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자원순환을 향한 ‘지속가능 설계’의 시대
유럽연합(EU)이 2024년 7월 발효한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은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예고한다. 이 제도는 제품의 내구성, 재사용성, 수리성, 재활용 가능성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무화하며, 제조·수입·유통 전 과정을 포괄하는 ‘제품 생애주기(Life Cycle) 기반 규제’다

기존의 에너지효율 중심 규제(ErP, WEEE, ELV 등)와 달리, ESPR은 디지털제품여권(DPP)과 순환경제 요건을 결합했다. 제품 내 재활용 소재 비율, 유해물질 관리, 수리 정보 제공 의무 등 16개 범주의 성능요건을 통해 기업은 생산과 공급망 전반에서 지속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에코디자인 통합경영’ 가속
유럽의 제조 대기업들은 이미 에코디자인을 핵심 경영전략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Electrolux)는 1990년대부터 제품 설계 과정에 환경평가를 통합했고, 최근에는 재활용 철강·플라스틱 비중을 35%로 상향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은 ‘EcoDesign Way’ 프로세스를 통해 신제품 100%에 에코디자인 원칙을 적용하고, 포장재를 전량 재생 골판지로 전환했다

H&M은 ‘Designing for Circularity’ 전략 아래 섬유 폐기물 재활용, 3D 패턴 커팅, 중고 상품 리세일 플랫폼을 결합하며 순환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고 있다. 애플(Apple)은 ‘Design to Disassembly’ 원칙을 적용해 분해용 로봇으로 희토류 자원을 회수하고, 아이폰 15 시리즈에 20% 이상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

이케아(IKEA)는 ‘Circular Investments’ 법인을 설립해 재활용 플라스틱·섬유 기술 기업에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H&M과 함께 섬유 재생 원사 기업 ‘Syre’를 공동 설립하는 등 공급망 수준의 순환경제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디지털·공급망·정책, 삼각축으로 진화
EU ESPR은 ‘디지털제품여권(DPP)’을 통해 제품의 원재료, 조립, 유통 정보를 QR 코드로 연결하는 데이터 기반 규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CIRPASS 2 프로젝트 등 유럽 산업계는 섬유·전자·타이어·건설자재 분야에서 DPP 표준화와 상호운용성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공급망 전반의 지속가능성 실사(CSDDD), 핵심원자재법(CRMA), 포장재규정(PPWR) 등이 병행 시행되면서, 제조사는 협력사 단계까지 재생원료 함량·인권·환경 기준을 관리해야 한다. 이에 이한경 대표는 “에코디자인 내재화, 디지털화, 지속가능한 조달이 기업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산업의 과제
한국 산업계에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에코앤파트너스는 보고서에서 ▲품목별 위임법 모니터링 ▲에코디자인 준수 진단 체계 구축 ▲전사 단위 실행계획 수립 ▲협력사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특히 DPP 시스템 대응을 위한 IT 인프라 및 데이터 관리 프로세스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U의 에코디자인 정책은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탄소와 자원 효율을 재정의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새 질서를 만들고 있다. 산업계가 이 변화를 규제가 아닌 혁신의 기회로 전환할 때, 지속가능한 경쟁우위가 열릴 것이다.

* 출처 : 「EU 에코디자인 선진사례로 본 산업계의 도전과 기회」(㈜에코앤파트너스 이한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