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개처럼 고요했던 시대의 공기가 어느새 보이지 않는 연산의 열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사고를 예측하며, 심지어 감정의 결까지 더듬어 모사하는 시대 우리는 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전환 속에서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하나입니다. 철학은 아직도 쓸모가 있는가. 그리고 저는 조용히, 그러나 확신을 담아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가장 절실한 때라고요.
기술이 앞서가고, 인간이 묻지 못하는 시대
2022년 말, ChatGPT가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백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가입했고, 사람들은 이 기계가 마치 사람처럼 대답하고, 글을 쓰고, 심지어 농담까지 건네는 모습에 경이로움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AI는 더 이상 실험실 안의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의사는 AI의 도움으로 CT 영상을 판독하고, 변호사는 AI가 추려낸 판례를 검토하며, 작가는 AI가 제안한 문장을 다듬습니다. 채용 담당자는 AI가 평가한 지원자 점수를 참고하고, 은행은 AI가 산출한 신용등급으로 대출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기술은 답을 주지만, 질문은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AI는 "어떻게"에 답하지만, "왜"와 "과연"에는 침묵합니다. 의료 AI가 90%의 정확도로 암을 진단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10%의 오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지 않습니다. 채용 AI가 특정 후보를 추천했을 때, 그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으로 '우수함'을 정의했는지 묻지 않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그 순간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묻지 않습니다.
기술의 속도는 인간의 숙고 능력을 앞질러 버렸습니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틀마다 인류 문명 초기부터 2025년까지 생산된 것과 같은 양의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압도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판단할 것인가 하는 성찰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이 등장합니다. 철학은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을 다시 던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의 세 가지 실천적 역할
철학은 흔히 상아탑 안의 추상적 논쟁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AI 시대에 철학이 갖는 의미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시급합니다.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제공하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철학은 판단의 기준을 세워줍니다.
2018년, 아마존은 자사가 개발한 AI 채용 시스템을 폐기했습니다. 이유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AI는 과거 채용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 여성 지원자를 체계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 체스 클럽' 같은 단어가 이력서에 있으면 감점 요인이 되었고, 남성 중심 직군의 과거 데이터가 편향을 재생산했습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AI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AI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철학이 개입합니다. 철학은 "공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원칙이 진정한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철학적 사유는 AI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가 내린 결정이 어떤 기준에서 나왔는지, 그 기준이 보편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기술은 효율을 제공하지만, 정의는 철학이 제공합니다.
철학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의미의 빈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통계, 분석 보고서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려주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AI는 패턴을 찾아내지만, 그 패턴이 왜 중요한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대인이 "존재 망각"의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우리는 사물을 도구로만 보고, 그 본질을 묻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AI 시대에 이 통찰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AI를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철학은 이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시한 "이성의 한계"에 대한 성찰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AI가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한다 해도, 그것은 경험의 영역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인간의 자유, 도덕성, 영혼의 불멸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은 AI의 계산 밖에 있습니다. 철학은 이 계산 불가능한 영역을 탐구하며, 인간이 기계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를 밝혀줍니다.
철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막입니다.
2021년, 유럽연합은 '고위험 AI'에 대한 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교육, 채용, 신용 평가, 법 집행 등에 사용되는 AI가 포함되었습니다. 이 규제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투명하고 설명 가능해야 하며, 최종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의 배후에는 깊은 철학적 신념이 있습니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입니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하지만 효율만을 추구하다 보면 인간의 존엄이 희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AI가 치료 가능성이 낮은 환자를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의료 자원 배분에서 제외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은 결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냅니다.
기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묻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AI 시대의 진짜 특이점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드는 근본적 변화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던져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AI가 창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묻게 되었습니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공모전에서 1등을 했을 때, 많은 예술가들이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기계에게 졌다는 패배감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흔들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했습니다. 그 중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자유와 주체성이 발현되는 영역입니다. AI는 노동과 작업을 대신할 수 있지만, 행위의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더 나아가, AI가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합니다. 나의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넷플릭스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안한 영상을 보고, 쇼핑몰 AI가 골라준 옷을 입는다면, 그것은 나의 취향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취향인가.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AI가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거나 유도하는 순간, 우리는 그 본질을 잃을 위험에 처합니다.
이 문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2016년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유권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맞춤형 정치 광고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침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개념을 떠올려 보십시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합의를 형성하는 공간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AI 알고리즘이 우리가 보는 정보를 선별하고, 우리의 생각을 예측하고, 우리의 행동을 유도한다면, 과연 그 공론장은 자유로운 것일까요.
더 근본적으로는 정체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통적으로 기억, 경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AI가 나의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AI가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규정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거부해야 할까요. 철학은 이 질문 앞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실존주의의 핵심 명제인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AI 시대에 더욱 절실한 의미를 갖습니다.
철학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유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순합니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켜주지만, 인간의 책임을 대신 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제대로 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2023년, 스탠퍼드 대학의 인간중심AI연구소는 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AI 개발자의 80% 이상이 자신들이 만드는 시스템의 윤리적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시간이 없고, 경쟁이 치열하고, 당장의 성과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기술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가치관, 편견,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사회에 배포되는 순간, 그것은 수백만, 수억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이 개입해야 합니다. 철학은 개발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AI는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정의로운가. 공정한가.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철학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고 만들어진 기술은 결국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우리가 철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AI가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더 강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하다'는 말은 물리적 힘이나 계산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찰하는 힘, 질문하는 힘, 판단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AI 시대에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가 성찰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의 부속품이 됩니다.
철학은 또한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과학과 기술은 많은 것을 해결해 주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사랑, 우정, 아름다움, 의미, 희망 이런 것들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철학은 바로 이 환원 불가능한 영역을 지키는 학문입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이 영역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철학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은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라고 묻는 학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AI 시대의 모습은 필연이 아닙니다. 선택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AI를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해방과 창조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기술만의 시대가 아닙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인간, 인간을 성찰하는 철학, 철학을 품은 사회만이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철학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내일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이 빛을 밝히는 곳에서, 철학은 그 빛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입니다. 그 나침반 없이 나아가는 여정은 아무리 빨라도 길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찾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새로운 사명입니다.
이 글은 저의 순수 지적 산물이므로 인용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사람으로 사람들과 사는날 말랑말랑한 뇌와 관점의 감성으로 전등이 등불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