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선진국’이라 하면 국민소득이 높고, 산업이 발달하며, 수출이 늘어나는 나라를 뜻했다. 경제는 곧 국가의 자존심이었고, 생산성은 번영의 상징이었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멀리 팔라”는 구호가 진보의 척도였다.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고, 도시는 불빛으로 잠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이 빠진 성장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며, 환경을 훼손하는 번영은 미래를 파괴하는 단기적 착각으로 여겨진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과학자들의 경고문이 아니라, 일상의 뉴스가 되었다. 여름의 폭우, 겨울의 이상고온, 식탁 위의 식량불안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20세기 산업화는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대가로 자연의 시간은 파괴되었다. 우리는 기술로 물질을 풍요롭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태의 균형을 잃었다. 이제 세계는 ‘성장의 속도’보다 ‘성장의 방향’을 묻는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말했다. “무한한 지구는 없다. 지구는 우주 속의 닫힌 배(Spaceship Earth)일 뿐이다.” 오늘날 ‘선진국’의 척도는 더 이상 GDP나 수출 규모가 아니라, 탄소 배출량, 재생에너지 비율, 순환경제의 수준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그린딜’을 통해 경제체계를 완전히 전환했다. 환경 규제가 아니라, 산업혁신의 동력으로 삼았다. 에너지, 포장, 운송, 농업까지 “탄소 없는 생산”을 경제성장의 기본 조건으로 재정의했다. 그 결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은 ESG 경영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투자 유치와 수출 경쟁력까지 강화했다. 이제 성장의 정의는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로 옮겨갔다.

환경을 수호하는 것이 곧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경제에 부담이라는 인식은 이미 낡은 신화다. 실제로, 글로벌 상위 500대 기업 중 ESG 투자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주가 안정성과 소비자 충성도가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된다. 친환경 포장, 재활용 인프라, 재생에너지 전환 등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90년대부터 ‘순환형 사회’를 국가 비전으로 설정했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폐기물 최소화를 설계했고, 소비자 교육과 기업 규범을 결합시켰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재활용률은 OECD 평균을 크게 웃돌며, 자원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독일 역시 ‘그린테크’를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K-뷰티, K-푸드, K-패션 등 각 산업에서 ‘지속가능 포장’과 ‘친환경 생산’이 수출경쟁력의 주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는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이 제품이 지구를 얼마나 아끼며 만들어졌는가”를 함께 본다.

풍요의 개념은 이제 ‘균형’이다

‘풍요’라는 단어는 더 이상 소비의 총량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풍요는 “경제성장과 환경수호가 조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경제학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학문이었다면, 지속가능성은 인간의 생존을 지키는 윤리다. 지속가능한 풍요란, 자연의 회복력 안에서 인간의 번영을 설계하는 새로운 문명적 선택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성장의 속도’를 위해 경쟁했다. 그러나 이제 필요한 것은 ‘성장의 지혜’다. 도시의 쓰레기봉투 안에서, 공장의 배출가스 속에서, 바다의 플라스틱 부유층에서 우리는 이미 문명의 경고문을 읽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기회를 가지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생태를 회복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순환경제, 바이오소재, 탄소포집기술 등은 새로운 산업혁명의 씨앗이다.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기준이다

기후위기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의 과제다. 국가든 기업이든 ‘환경을 지키는 일’을 선택사항으로 여기는 곳은 결국 시장에서도 외면받는다. 탄소국경세, ESG 평가, 소비자의 윤리적 구매행동은 모두 “환경이 곧 경제”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선진국이란 물질의 양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질로 평가받는 나라다. 진정한 기업의 성공은 매출 그래프가 아니라 지구와의 관계를 얼마나 건강하게 맺고 있는가로 결정된다. 이는 정부의 규제나 국제협약 이전에, 문명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다.

풍요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산업의 시대에서 생태의 시대로 건너가고 있다. 성공의 척도가 ‘속도’에서 ‘균형’으로, ‘이익’에서 ‘책임’으로 옮겨가고 있다. 경제성장과 환경수호의 균형은 더 이상 이상주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명의 유일한 생존 공식이다.

이제 풍요는 소비의 크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선택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의 기업, 정책,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지속가능성을 외면한 성장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며, 자연을 파괴한 풍요는 결국 인간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

오늘의 문명은 묻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질 것인가, 아니면 더 오래 존재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인류는 지금, 문명사적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

“풍요의 정의는 바뀌었다. 경제의 속도가 아니라, 생태의 숨결로 평가받는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