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원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물질만능주의의 시대 속에서, 재생원료나 사용 포장재가 값싼 대체품 정도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때 쓰레기로 덮였던 난지도, 그리고 여전히 포화에 가까운 수도권 매립지는 그 증거다. ‘자원’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닌, 인류의 태도에 대한 시험지로 바뀌고 있다.
난지도, 산업화의 그림자 속에 묻힌 양심
서울 서북부 마포구에 위치한 난지도(蘭芝島)는 본래 한강 하류의 평범한 섬이었다. 그러나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 생활쓰레기의 주요 매립지로 사용되며, 약 15년간 9,200만 톤의 쓰레기가 쌓였다. 당시 하루 평균 1만 톤 이상의 폐기물이 반입되었고, 분리배출 체계가 미흡한 탓에 가연성·불연성 쓰레기가 뒤섞여 부패했다. 그 결과, 메탄가스 폭발과 침출수 유출이 반복되며, 서울의 ‘쓰레기산’은 도시문명의 자화상으로 남았다.
난지도는 단순한 매립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비의 무덤’이었다. 우리 사회가 물건을 만들고, 쓰고, 버리는 속도에 맞춰 자원은 무덤으로 향했다. 포장재, 일회용 용기, 산업폐기물 등은 매일같이 산을 이루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그것이 발전의 부산물로 여겨졌다. 국민소득이 오르고, 소비가 활발해지면, 그에 따르는 폐기물도 ‘불가피한 결과’로 치부되었다.
난지도에서 ‘하늘공원’으로 – 치유의 역설
1993년 난지도 매립장은 포화상태로 문을 닫았고, 이후 10여 년의 복원 과정을 거쳐 2002년 하늘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미화사업이 아니었다. 하늘공원 아래에는 여전히 1억 톤 가까운 매립 쓰레기가 매몰되어 있다. 지금도 내부에서는 메탄가스가 발생해, 이를 포집하여 발전용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낭비가 오늘의 에너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는 ‘희망의 상징’이자 동시에 ‘경고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 다시는 이런 매립지를 만들지 말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현재 수도권 매립지의 현실
현재 인천 서구의 수도권매립지는 서울, 인천, 경기의 폐기물을 함께 처리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매립시설이다. 1992년 개장 당시 5~6년 정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지속적인 연장으로 현재까지 30년 이상 가동되고 있다. 매립지는 총면적 약 1,700만㎡, 축구장 2,400개 규모에 달하며, 지금도 하루 약 1만 2천 톤의 폐기물이 들어온다.
1992년 개장 이후 30여 년간 가동된 이 매립지는 이제 종료시점이 임박해 있다. 대체 부지가 확정되지 않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 상황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버리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매는 구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종료 이후 우리는 어디에 또 다른 ‘산더미’를 만들 것인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폐기물이 쌓인다면, 단 30년 만에 또 새로운 매립산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100년 동안 동일한 구조가 유지된다면 우리는 세대 단위로 매립산 3개 이상을 만든 셈이다. 문제는 이 산더미들이 단일 세대의 부담을 넘어 다음 세대의 유산이 된다는 점이다.
포장의 철학 — ‘살아 있는 자원’
오늘날 대부분의 폐기물은 포장재에서 비롯된다. 화장품, 식품, 생활용품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포장은 제품의 첫인상이며, 동시에 마지막 쓰레기가 된다. 우리는 포장을 단순히 ‘보호재’나 ‘마케팅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포장은 순환경제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포장은 제품의 끝이 아니라 자원의 시작이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환경경제학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폐기물 중 약 40%가 포장재에서 발생하며, 이 중 상당수가 매립 또는 소각된다. 만약 기업이 재활용 용이한 구조로 설계하고, 소비자가 분리배출에 협력하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인한다면, 포장은 ‘쓰레기’가 아니라 ‘소재 순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소비자의 착각, 기업의 책임
한 번 쓰고 버리는 포장재가 ‘작은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문제는 커진다. 포장재 하나하나가 모여 매립산이 되고, 침출수가 강을 오염시키며, 결국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자원의 윤리’를 회복해야 할 때다.
✔ 기업은 ESG 경영을 표방하지만, 포장에 대한 실질적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불과하다.
✔ 친환경 포장을 통한 생산-소비-회수의 순환체계 구축은 단순히 이미지 제고를 넘어 기업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 해외 기업들은 이미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Refill Pack), 단일소재 구조, 무잉크·무라벨 설계 등으로 전환 중이다.
✔ 국내에서도 점차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으나, 아직은 “원가 상승”이나 “소비자 인식 부족”을 이유로 망설이는 기업이 많다.
난지도에서 배우는 교훈
난지도는 더 이상 쓰레기산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아래 묻힌 자원은 여전히 말을 걸고 있다.
“한 번 더 써 달라, 다시 써 달라.” 그 메시지는 단순한 환경보호의 외침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지속을 위한 절박한 요청이다. 과거 난지도에서 불타올랐던 메탄가스의 불길은 경고였다면, 하늘공원 위의 바람은 새로운 가능성이다.
‘버리는 경제’에서 ‘순환하는 경제’로, ‘편리한 포장’에서 ‘책임 있는 포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원을 대하는 태도의 혁명
우리는 자원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린다. 그러나 그 대가는 오래도록 남는다. 포장재의 가벼움 속에 지구의 무게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불해야 할 책임이다. 경제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환경수호와 지속가능성을 품은 성장, 즉 “품위 있는 풍요”의 시대가 와야 한다. 그 첫걸음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의 손끝, 쓰레기봉투 앞에서의 작은 선택이다.
지속가능성을 외면한 성장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며, 자연을 파괴한 풍요는 결국 인간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
오늘의 문명은 묻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질 것인가, 아니면 더 오래 존재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인류는 지금, 문명사적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