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지고 독해졌다'. 현재 추진 중인 3차 상법 개정안에 대한 평가다. 금년 7월에 통과된 1차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모든 주주'로 확대하여, 이사가 대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관행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도록 의무를 강화했다. 또한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이사회 내 비율을 높여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높였다. 8월에 추진된 2차 상법 개정안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감사위원과 이사를 분리 선출하도록 하여, 대주주의 입김이 감사위원 선임에 미치는 영향을 줄였다. 또한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여 이사 선임에 소액주주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했다.
1, 2차 상법 개정에 이어, 10월 20일 현재, 주가 조작 및 불공정 거래에 대한 엄정 대응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적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복수 발의되어 연내 처리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자사주 의무 소각이 경영권 방어 수단 상실과 기업 활동 위축의 이유로 1, 2차 개정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차 개정안이 1차에 비해 '더 센' 상법이었다면, 3차 개정안은 '더 독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자사주는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자사의 주식을 회사 자금으로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주가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었다고 판단될 때,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안정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해 자사주를 취득한다. 스톡옵션이나 RSU(양도제한조건부 주식) 등 임직원에 대한 성과 보상을 위해서도 취득한다. 또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대주주가 경영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취득·처분이 전면 자유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상장사 중 자사주를 보유한 곳은 71.5%다. 기업 한 곳당 보유 자사주 비중은 전체 주식 대비 평균 4.5%다. 유가증권시장은 2019년 5.4%에서 작년은 5.8%로 더 높아졌다. 심지어 자사주 비중이 40%에 달하는 증권사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사주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꼼수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악용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 3차 상법 개정의 명분이 됐다는 평가다. 복수안이 상정됐지만, 가능성이 높은 개정안은 신규 자사주는 즉시 소각, 기존 보유 자사주는 6개월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6개월 뒤 공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에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은 1년 내에 처리해야 한다. 또한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한다는 안과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하되, 자사주 비율이 3% 미만일 때는 2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하는 법안도 함께 발의된 상태다. 법이 시행되면, 임직원 보상용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자사주는 모두 소각해야 한다.
상장회사협의회의 '상장기업 자기주식 운용 실태와 제도 변화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사가 소각해야 하는 자사주 규모는 72조 원에 달한다. 상반기 기준 전체 자사주(76조 9000억 원) 중 주가 부양 목적으로 자진 소각하는 물량(4조 2000억 원)과 임직원 보상용 주식(1조 원)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는 상장사가 보유한 전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52.1%에 해당된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여야 하기 때문에,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줄어들고 주주가치는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가에선 자사주 의무 소각이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당 순이익(EPS)과 주당 순자산(BPS)이 높아지는 효과가 생기며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없고, 임직원을 위한 보상 및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매입한다. 한국에서는 '자사주를 소각해야만 주주 가치가 상승한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기업회계기준(GAAP)에 따라 매입 금액만큼 자본에서 차감된다. 자사주를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 주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자사주 매입만으로도 소각과 동일한 주가 부양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애플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체 주식 수의 약 39%에 달하는 100억 주 이상을 매입해 소각했다. 이 기간 애플의 주가는 약 10배 이상 상승했고, EPS는 연평균 15.7% 성장했다.
3차 개정안은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기업들은 매우 곤혹스럽다. 적대적 M&A를 방어하거나,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자사주를 활용한 자금 조달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취득한 뒤 소각하지 않고 보관해 왔다. 이렇게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호 세력에 매각하여 '백기사'로 쓰여왔다. 과거 SK는 헤지펀드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에 자사주를 금융권에 매각해 우호 지분을 강화했으며, 삼성도 엘리엇의 공격을 보유 중인 자사주를 KCC에 매각하여 경영권을 방어했다.
자사주를 활용한 자금 조달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교환사채(Exchange Bond, EB)'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자사주 대상 EB 발행 신고 건수는 2023년 25건, 2024년 28건에서 2025년 9월 말까지 50건으로 올해 들어 급증했다. 그러나 EB 발행이 단순히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우호세력에게 지분을 넘기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자사주 활용 EB는 기업이 보유한 자기주식을 교환 대상으로 삼아 발행하는 회사채이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면서 나중에 자사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채권이다. 그러나 9월 중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한 36곳 중 25곳이 다음 날 주가가 하락하며, 소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환권을 행사할 경우 자사주와 달리 의결권이 되살아나 지분 희석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9월 발간된 대한상공회의소의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의 문제점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자사주 취득 유인 약화로 주가 부양 효과가 사라져 주주 권익 제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1·2차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위협이 커진 상황 속 소각 의무화는 기업의 방어 무장 해제와 같다"며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방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면, 기업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여 장기 투자에는 소홀하게 된다. 소액주주 보호와 더불어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성장 잠재력 확충이라는 목표를 훼손하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단기적으로 주주 가치 제고에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R&D, 설비 투자, 신성장 동력 등 장기적 성장 잠재력 확충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의 자본 배분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넘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투자로 이어지도록 지원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1차(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2차(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3차(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이어지는 상법 개정의 흐름은 '주주 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자칫 외국계 투기 세력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주가 조작 및 불공정 거래에 대한 엄정 대응 기조는 일관성 있게 유지하되, 개정 상법이 실제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기업들이 새로운 제도적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포용적인 시각으로 격려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