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뚜렷해지며, 친환경 농산물 구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소비 형태가 일상에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 5월 발표한 ‘2025 식품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4.8%가 “가격이 비싸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위해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대비 12.3%p 증가한 수치로, 소비자 인식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다.
특히 30~40대 주부층과 20대 MZ세대를 중심으로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식품의 원산지와 생산 방식, 유기농·무농약 인증 여부 등을 꼼꼼히 따지며 구매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가격과 양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어떻게 만든 먹거리인가’가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통업계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 대응 중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들은 친환경·유기농 전용 코너를 확대하고, 산지 직송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쿠팡은 최근 ‘친환경 장보기’ 카테고리를 신설했고, SSG닷컴은 유기농 제품의 검색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필터 기능을 도입했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생산 농가들도 변화에 나섰다. 경북 상주의 유기농 농장 대표 이성훈 씨는 “불과 3~4년 전만 해도 유기농은 틈새시장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됐다”며 “소비자들이 우리가 하는 친환경 실천을 믿고 지지해주는 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치소비 흐름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식품안전 문제를 체감한 소비자들이 실천하는 하나의 ‘생활윤리’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진아 교수는 “친환경 농산물 소비는 환경보호, 건강,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연쇄 작용”이라며 “정부와 업계의 뒷받침이 계속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구조로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격 장벽은 존재한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20~30%가량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아, 저소득층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좁다. 이에 따라 정부는 친환경 인증 확대와 함께 소비자 부담을 덜 수 있는 지원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친환경 학교급식 지원사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유기농 식재료를 제공하며 소비 기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농업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윤리적 판단에 근거한 소비는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친환경 농산물 구매는 이제 건강한 삶과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일상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