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박쥐의 모습

우리나라 연구진이 박쥐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박쥐 오가노이드(Organoid·인공 미니 장기) 라이브러리’를 전 세계 최대 규모로 구축했다. 코로나나 메르스 같은 고위험 전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이나 동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인공 미니 장기를 일컫는 말로, 각종 질병 연구 및 약물 테스트에 활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최영기 소장과 유전체교정연구단 구본경 단장을 비롯한 공동 연구진들은 15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야생 박쥐 5종에서 네 종류의 장기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이를 라이브러리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박쥐 오가노이드를 만든 경우는 몇 차례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의 박쥐에서 여러 형태의 오가노이드를 만든 경우는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1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왜 하필 박쥐일까. 최 소장은 “인간이 걸리는 감염병의 75%가 동물에서 유래하고, 박쥐는 그중 가장 치명적인 인수공통바이러스(사람과 동물 사이를 오가며 전파되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숙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쥐가 고위험 전염병의 잠재적 위협인 만큼, 박쥐 오가노이드를 구축해 놓으면 새 전염병이 퍼졌을 때 병이 박쥐로부터 유래했는지, 어떤 항바이러스 약재를 써야 하는지 빠르게 알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소장은 “박쥐는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지만 질병에는 잘 걸리지 않는다”면서 “박쥐 오가노이드는 향후 박쥐의 면역 내성의 비밀을 밝히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껏 박쥐에 대한 연구는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과일박쥐에 주로 한정돼 전 세계에 번지는 전염병 연구를 진행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국내 연구진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야생박쥐 20여 종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된 박쥐 5종을 추렸고, 전염병을 통해 생기는 질병 연구에 유용한 주요 장기(기도·폐·신장·소장)의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박쥐는 실험 동물로 거의 활용되지 않는 종이라 유전체 정보가 워낙 없었기 때문이다.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라 겨울에 조직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최 소장은 “박쥐 조직을 보유한 곳을 찾기 위해 전화를 안 돌려본 곳이 없다”고 했다. 연구진은 이번 박쥐 오가노이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것을 발판 삼아, 향후 감염병 질병 연구 플랫폼을 더욱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최 소장은 “신종 감염병을 선제적으로 막아낼 다각적인 기술 연구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