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지난 4월 초 '합성생물학 육성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탄핵정국 속에서도 여야 모두가 국가 미래를 위해 합성생물학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것이다.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학적 방법으로 생물체를 재설계하는 생명공학의 핵심기술로, 바이오 제조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는 최첨단 무기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면, 수많은 부품을 조립해 자동차를 만드는 것처럼 유전자, 단백질, 세포 등을 부품화·표준화하여 신약, 신에너지, 식품 등을 만드는 기술이다. 그야말로 '바이오 금맥'으로 통하는 미래 먹거리 핵심기술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합성생물학은 400가지 이상의 잠재적 용도가 있으며, 특히 의료·건강, 농업·식품, 소비재·서비스, 소재·에너지 생산에 획기적인 성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10년 이내에 반도체 시장규모의 3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일상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는 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코로나 백신은 합성생물학의 대표적 산물로 꼽힌다. 기존에는 백신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됐는데, 코로나 백신은 불과 11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합성생물학 전문 회사인 징코바이오워크스를 통해 대량의 mRNA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도 합성생물학을 통해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건강 부문에서는 2030~2040년까지 매년 1조 3000억 달러(약 1885조 원)의 경제적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합성생물학을 통해 육류를 세포 단위에서 직접 제조하여 환경을 보호하면서 소비자 가격도 낮추려는 기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 슈퍼미트사는 닭고기를, 미국 핀리스푸드사는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참다랑어를, 모사미트(네덜란드), 업사이드푸드(미국), 알레프팜스(이스라엘) 등은 스테이크 질감의 배양 소고기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농업 분야의 시장 전망은 2030년까지 연간 1조 2000억 달러(약 1740조 원) 규모로 예상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감안한 질병의 유전 가능성, 치료 및 노화 관련 케어 분야에도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미생물이 방탄조끼보다 강도가 더 높은 합성 근섬유인 티틴(titin)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미세조류나 식물자원을 이용하여 청정에너지와 바이오연료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바이오리파이너리(biorefinery)'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장균과 효모 등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금년 초 출시한 신약 개발용 생성형 AI 모델인 '바이오네모'는 합성생물학의 고도화를 이끌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미국에서는 합성생물학의 개념을 설명할 때 '세포를 프로그래밍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DNA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생각하고 IT의 코딩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다.
합성생물학의 핵심에는 바이오파운드리가 있다.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을 접목해 광범위한 바이오 연구개발 과정을 자동화·고속화하는 시스템으로, 로봇, 분석장비와 같은 하드웨어와 연구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데이터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등이 포함된다. 합성생물학에 필요한 복잡한 과정을 빠른 순환 공정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반도체 위탁 생산을 뜻하는 파운드리처럼 빠르게 생명체 구성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정부가 주도하여 육성하고 있으며, 선진국에서는 기업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K-바이오파운드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에 양면성이 있듯이 합성생물학에도 여러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의도치 않은 결과로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사회적 양극화나 유전자 조작에 따른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생화학적 무기의 범람으로 인류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앞다퉈 국가전략 기술로 채택하고, 합성생물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의 빅뱅을 예상하는 것이다. 인터넷 등장 이후 세상이 빠르게 변했듯이 '바이오 분야의 인터넷'으로 불리는 합성생물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주도하며,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우수한 제품들을 더 많이, 더 싸게 그리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글로벌 연구개발 특별위원회가 공개한 '글로벌 기술수준 지도'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성생물학 경쟁력은 세계 7위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1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4년까지 24년간 발표된 합성생물학 분야 논문 1만 4437건을 분석한 결과, 미국과 중국이 각각 4760건, 2932건으로 25%, 16%를 차지하여 1, 2위에 올랐다. 이어 영국 9%, 독일 7%, 일본 4%의 순으로 집계됐으며, 한국은 단지 2%에 불과해 13위를 기록했다.
논문 경쟁력뿐만 아니라 산업화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뒤처진다는 평가다. 미국은 이미 2020년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합성생물학제조연구기관을 신설해 2억 7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2021년엔 미국혁신경쟁법을 통해 합성생물학을 10대 혁신기술로 지정했다. 합성생물학을 '바이오 패권'을 위한 무기로 규정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빅테크기업과 벤처캐피털이 들어오면서 현재 미국 내 합성생물학 관련 기업은 800여 개로 추정된다.
영국도 합성생물학을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소버린 테크(Sovereign Tech)'로 삼고 2012년에 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립 합성생물학센터(SynbiCITE)를 비롯해 옥스퍼드대 바이오파운드리, 임피리얼칼리지런던의 합성생물학&혁신센터(CSynBI)가 삼각편대를 이뤄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상엽 국가바이오위원회 위원장(KAIST 연구부총장)은 "앞으로 모든 바이오산업에서 합성생물학 없이 경쟁력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기부는 이번 육성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법률 제정은 단순한 제도 정비를 넘어, 우리 사회가 합성생물학의 미래 가치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바이오산업을 국가의 핵심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의지와 글로벌 바이오 주도권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서 나갈 수 있는 실질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합성생물학은 융합과 협업이 핵심이다. 생명공학, 정보기술, 인공지능, 나노기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성과를 낼 수 있으며, 소수의 전문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계와 산업계, 정부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로드맵, 융합형 인재 양성, 민간투자 촉진, 규제 개혁, 기술의 안전성과 윤리의식까지 연결돼야 한다.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수용성 간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반드시 가야 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려면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빅뱅(BigBang)은 '공간의 파괴'가 아니라 '공간의 확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승자독식이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만의 공간을 선점하면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오늘도 불철주야 우리의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들을 응원한다.
*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5180468?sid=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