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항구에 머무는 배, 그리고 달리지 않는 말]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는 오래 곱씹게 되는 비유가 등장한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가장 안전하다. 파도도 없고, 바람도 없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항구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니라고. 배는 본래 바다로 나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수평선을 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이 비유는 2026년을 앞둔 모든 기업에게 유효하다. 여기에 하나의 이미지를 더해보자. 올해는 말의 해다.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다. 평지든 초원이든, 때로는 험한 길에서도 말은 자신의 근육과 호흡을 사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말에게 가장 어색한 상태는 멈춰 서 있는 순간이다. 배가 항구에만 머물 때 본래의 의미를 잃듯, 말 역시 달리지 않을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잊는다.

[모든 기업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달리고 있다]
2026년을 앞둔 지금, 모든 기업이 같은 상태에 있지는 않다. 어떤 기업은 이미 전력 질주 중이다. 기술 전환, 시장 변화, 고객 요구의 변화 속에서 쉼 없이 방향을 조정하며 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달리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반면, 또 어떤 기업들은 속도를 줄인 채 주위를 살피고 있다. 기존 사업은 아직 작동하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탄력을 느끼지 못한다. 뛰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디로 달려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속도로 시간을 보낸다. 말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피로한 상태다. 달리지도 쉬지도 못하는 상태.

[2026년은 단순한 연도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내년을 준비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2026년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존 사업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시장의 반응 속도가 인간의 의사결정 속도를 앞지르는 시점이다. 이때도 과거의 성공 공식에 기대어 천천히 걷겠다는 선택은 사실상 멈춤에 가깝다.

신사업을 논의할 때 자주 등장하는 미래는 대부분 현재의 언어로 설명된다. 기존 고객의 확장, 기존 기술의 고도화, 이미 성공한 모델의 반복. 물론 이는 합리적이고 안전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정교하게 관리된 현재의 연장일 뿐이다.

[미래를 현재의 언어로만 설명하지 말 것]
진짜 미래 사업은 불편하다. 기존 조직 구조와 맞지 않고, 지금의 KPI로 설명되지 않으며, 단기 손익 계산서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회의는 길어지고, 문서는 두꺼워지며, 결정은 늦어진다. 말이 출발선 앞에서 계속 발굽만 구르는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러나 말은 결국 달릴 때 가장 안정적인 리듬을 찾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기다리기보다, 의미 있는 방향을 정하고 움직일 때 조직은 오히려 균형을 찾는다.

[미래 사업의 출발점은 ‘의미’다]
미래 사업은 예측이 아니라 의미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왜 지금인가, 왜 우리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전은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로 작동한다. 기술과 시장만이 아니라 사회, 환경, 사람의 삶까지 연결되는 통합적인 서사가 필요하다.

의미 있는 비전은 구성원을 설득하고, 고객을 끌어들이며, 파트너를 모이게 한다. 말이 무리를 이뤄 달릴 때 더 멀리 갈 수 있듯, 기업도 공감의 방향을 공유할 때 지속적인 속도를 낼 수 있다.

[미래에는 웃음과 여백이 필요하다]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지나치게 진지해진다. 모든 신사업이 처음부터 완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게 될까?”라는 질문과 함께 웃음이 나오는 아이디어가 사람의 마음을 연다. 말도 달리는 중간중간 호흡을 조절하듯, 기업의 미래에도 여백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재미는 가벼움이 아니다. 재미는 참여를 만든다. 참여는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실험은 결국 새로운 길을 연다.

[에필로그|다시 달릴 시간]
2026년을 맞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우리는 왜 이 배를 만들었는가. 우리는 왜 이 말을 마구간에서 꺼내왔는가. 답은 단순하다. 나아가기 위해서다.

지금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이미 달리고 있든, 속도를 잃었든, 출발선 앞에서 망설이고 있든. 중요한 것은 다시 움직이는 선택이다. 미래는 미리 정해진 결승선이 아니라, 달리며 만들어지는 궤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