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상용화의 ‘마지막 1m’로 불리는 측정·제어 병목을 풀기 위해 국내 기업 SDT가 ‘양자표준기술’에 집중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양자현상은 미세한 신호를 정확히 읽고 흔들림 없이 제어해야 성능이 나온다. 결국 장비·부품·계측의 표준화가 상용화의 출발점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SDT는 2017년 11월 설립된 비상장 기업으로, 본사는 서울에 있다. 윤지원 대표가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다. 회사는 스스로를 양자 기술 생태계에 필요한 소자·부품·장비를 설계·제조하는 ‘QDM(Quantum Design and Manufacturing)’ 기업으로 규정한다.
핵심 제품군은 ‘양자표준’ 성격의 제어·계측 장비다. 예컨대 QCU(큐비트 제어 장치), TTMU(광자 도착 시간을 피코초 단위로 측정하는 타임태깅 장비), CCU(동시계수 장비) 같은 모듈을 내세운다. 광자 기반 실험, 양자키분배(QKD) 연구, 다양한 물리 플랫폼 실험에서 반복 재현성과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금 조달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200억 원 규모 프리IPO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고, 그 이전 시리즈 A·B에서 270억 원을 유치했다고 알려졌다. 회사는 이 투자금을 바탕으로 양자컴퓨터 제조 및 클라우드 서비스용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해외 협력으로 외연을 넓히는 전략도 병행한다. 핀란드의 실리콘 기반 QPU 기업 세미콘과는 칩과 정밀 측정 장비를 맞교환하는 형태의 협력을 발표했다. 미국 중성원자 방식 선도 기업 큐에라가 출범한 글로벌 파트너십 ‘큐에라 퀀텀 얼라이언스’에도 합류했다. 싱가포르 애니온 테크놀로지스와는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공급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소식이 전해졌다.
다만 ‘양자표준기술 기업’의 길은 기술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첫째, 표준은 시장에서 채택돼야 표준이 된다. 국내 수요가 연구 중심에 머물면 장비 판매는 단발성으로 끝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파트너십이 곧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해외 생태계에 편입되는 속도와, 핵심 모듈·설계·제조에서 주도권을 쥐는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
대안은 명확하다. 정부는 “양자 산업 육성” 구호보다 공공 조달과 테스트베드로 초기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장비 구매를 넘어 산업 현장에서 검증하는 실증 사업을 상시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장비 스펙 경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호운용성, 유지보수, 공급 안정성 같은 ‘표준의 조건’을 제품 로드맵에 못 박아야 한다. 양자 기술의 본질이 불확실성이라면,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그 불확실성을 줄이는 표준과 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