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퀸즈 갬빗〉을 보았다. 체스라는 게임이 주는 정적이면서도 치열한 긴장감,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사고하고 계산하며 상대를 압도하는 장면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체스에서 인간은 오래전에 전산프로그램에게 졌다.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바둑은 좀 더 늦게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그 신화도 무너졌다.

체스와 바둑, 서로 다른 게임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간의 ‘사고력’을 상징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고력의 상징인 체스와 바둑에서 세계 최고의 고수들이 패배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의 확장

이때 등장한 단어가 인공지능이다. 체스를 두는 프로그램, 바둑을 두는 프로그램을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이라 부른다. 계산을 잘하고, 경우의 수를 탐색하며, 인간보다 실수를 덜 하는 존재. 하지만 당시의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판 위’에 갇힌 존재였다. 물리적 세계와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체스와 바둑을 좋아하고 체스와 바둑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충격이었지 일반인인 우리에게는 쇼크와 재미를 주었다.

지금은 다르다. 인공지능은 화면 속을 벗어나 물리 세계로 나오고 있다. 이른바 ‘피지컬 AI’다. 로봇 팔이 스스로 판단해 부품을 집고,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공간을 제공하는 로봇으로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활보한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사람 대신 생산라인을 채운다. 우리 일반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라지는 노동, 이동하는 역할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단순 노동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작업은 피지컬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자동차 산업을 떠올려보면 미래는 쉽게 그려진다. 차체를 만들고, 용접하고, 조립하는 공정 대부분은 로봇이 맡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 많은 이들이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역할이 이동한다’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역할을 찾아야 한다.

남는 것은 창의성인가, 질문하는 능력인가

미래의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이 담당할 영역은 아마도 디자인, 콘셉트, 사용자 경험 같은 영역일 것이다. 단순히 예쁜 외형이 아니라, 왜 이런 형태여야 하는지, 어떤 감정을 전달할 것인지 묻는 일이다.

AI는 정답을 찾는 데 능하지만, 질문을 만드는 데는 아직 인간이 강하다. 그것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체스 이후의 인간을 생각하며

체스판 위에서 인간은 졌지만,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다. 피지컬 AI가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의 경쟁력은 상상력과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인간에게 지식이 만들어주는 경쟁력은 이제 없다. 의미를 찾는 연결과 질문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오늘도 우리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