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수술은 비교적 흔한 수술로 인식되지만 역사적으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금기’에 가까웠다. 갑상선이 크게 부은 환자는 지금도 난이도가 높다. 과거의 거대 갑상선종은 귀만 갖다 대도 혈류 소리가 들릴 정도로 혈관이 발달해 출혈 위험이 컸다. 이런 조건에서 외과가 갑상선을 수술 대상으로 삼기까지는 오랜 시행착오와 사회적 거부감이 겹쳤다.
자료에 따르면 1850년 이전 전 세계에 기록으로 남은 갑상선 수술은 70건에 불과했다. 위험성이 너무 커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1850년 이후에도 프랑스 의학회가 갑상선 수술 자체를 금지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당대 유명 외과의들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로버트 리스턴은 “산 사람의 몸에서 갑상선을 떼어내려는 수술은 죽음을 무릅쓰지 않고는 할 수 없다. 결코 시도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무엘 그로스도 “정직하고 올바른 의사라면 결코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단계에서 심각한 위험과 대량 출혈을 경고했다.
이런 공포의 배경에는 ‘수술 환경’이 있었다. 마취가 없던 시절엔 빠른 칼이 생존 확률을 좌우했다. 리스턴을 둘러싼 ‘300% 사망률’ 일화는 당시 외과의 위험을 상징한다. 관람석이 있는 ‘오퍼레이션 티어터’에서 다리 절단을 8분 만에 끝냈지만 환자는 감염으로 숨지고, 조수는 손가락 절단 뒤 폐혈증으로 사망했으며, 옆에 있던 기자는 외투가 찢기는 순간 충격으로 쓰러져 숨졌다는 설명이다. ‘한 수술에 3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과장처럼 들려도, 수술이 곧 감염과 쇼크의 영역이던 시대 분위기를 보여준다.
갑상선 치료는 수술만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기원전 셀서스가 최초로 갑상선 수술을 했다는 기록이 소개되지만, 어떻게 했는지와 생존 여부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후 약 600년이 지나서야 ‘환자가 죽지 않았다’는 형태의 성공 기록이 아랍 세계에서 등장한다. 12세기 무렵에는 이탈리아 살레르노 그룹이 해초를 태운 젤을 먹이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봤다는 내용도 나온다. 해초를 태워 요오드를 얻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방법이 잔혹했다는 점이다. 갑상선이 너무 큰 경우 달군 쇠꼬챙이로 찔러 태우는 방식이 시도됐고, 이는 “고문”에 가깝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굵은 실이나 와이어를 넣어 조직을 묶어 괴사시킨 뒤 떨어져 나오게 하는 ‘세톤법’도 거대 갑상선종에 적용됐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다른 질환에서 쓰이는 기술이지만, 목에 적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치료의 한계를 드러낸다.
수술을 ‘가능한 기술’로 만든 또 다른 축은 이슬람권의 의학 발전이었다. 중세 유럽이 침체를 겪는 동안 그리스·로마 지식을 계승해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켰고,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무어인 사회에서 알부카시스가 직접 개발한 정교한 도구로 고난도 수술, 특히 갑상선 수술을 성공시켰다는 설명이 나온다.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을 벗어나 “외과의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언급된다.
유럽이 다시 ‘현대의학’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해부학의 부활이 결정적이었다. 1506년 무렵 라오쿤상이 발굴되면서 예술가들이 인체의 사실적 묘사에 충격을 받고 해부학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는 각성이 생겼다는 설명이 나온다. 미켈란젤로의 해부학 수업 장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 사례가 함께 언급되고, 다빈치 해부도에는 갑상선이 등장하는 최초의 그림이 있다고도 소개된다. 해부학 지식의 증가는 외과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맥락이다.
외과의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도 변했다. 텍스트는 ‘닥터’와 ‘서전’의 용어 차이를 짚으며, 한때 상처를 돌보는 일은 이발사들이 맡고 내과의는 이런 ‘허드렛일’을 멀리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발소의 회전 기둥이 붕대와 동맥·정맥을 상징한다는 설명도 나온다. 외과의가 검안 같은 일을 맡으며 경험을 축적했고, 환자의 생전 증상과 해부학적 변화를 연결해 병의 원인 이해를 쌓아 ‘파트를 담당하는 의사’로 발전했다는 서술이 뒤따른다.
다만 ‘표준 수술’이 됐다고 해서 쉬운 수술이 된 것은 아니다. 갑상선 수술은 목소리 신경 등 보존해야 할 구조물이 미세하게 많고, 자칫하면 출혈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정교함이 요구되는 고난도 수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가락만 넣어 떼면 된다”는 식의 농담은 수술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인식이라고 선을 긋는다. 수술의 대중화가 ‘과소평가’로 이어질 때, 안전과 숙련이라는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갑상선 수술의 역사는 기술의 승리이면서 동시에 의료 윤리의 교훈이다. 과거의 잔혹한 시도는 ‘살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가’를 드러냈다. 오늘의 과제는 다른 방향에 있다. 수술 숙련도 기반의 표준화, 합병증 관리, 환자 설명의 내실도 강화해야 한다. 금기였던 수술을 표준으로 만든 힘은 결국 과학과 시스템이었다. 그 시스템을 느슨하게 만드는 순간, 갑상선 수술은 다시 위험한 수술로 되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