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엑시트(Exit)’란 창업자나 투자자가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거나 창업자가 사업 성과를 거두는 전략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IPO(기업공개)나 M&A 등을 통해 이뤄진다. ‘얼리 엑시트(Early Exit)’는 회사가 유니콘처럼 기업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지거나 IPO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기 전, 비교적 초기 단계나 작은 규모일 때 M&A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이는 초기 투자자의 회수 기간을 단축하고, 자금 순환 속도를 높여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한다.

‘연쇄 창업 문화(Serial Entrepreneurship)’가 일찍부터 뿌리내린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가 회사를 작은 규모일 때 적절한 가치에 매각하고, 그 자본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빠르게 재도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엔비디아, 구글, 애플,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도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유망 기술이나 ‘뛰어난 인재 확보(Acqui-hire)’를 위해 M&A에 적극적이다.

또한 스타트업도 대부분 대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엑시트 목표로 삼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상 기업의 니즈에 맞춘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기회를 포착한다. 비즈니스가 궤도를 벗어나도 ‘실패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해, 조기에 사업을 정리하는 것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국 스타트업의 회수 시장은 미국과 달리 IPO에 과도하게 편향되어 있어, M&A를 통한 얼리 엑시트 비율이 매우 낮다. 창업자가 회사를 매각해 큰 수익을 얻을 경우, 특히 외국 기업에 매각할 때 ‘먹튀’로 비난받거나 사회적 부정적 시선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나 투자자 모두 ‘유니콘 신화’에 집착하거나 IPO를 통한 ‘대박’만을 목표로 삼아, 적절한 시점의 소규모 M&A 기회를 간과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소수의 기업만이 성공하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 Risk, Low Return)’ 구조에 갇혀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금은 회수되지 못하고 묶여 있다. 얼리 엑시트는 이 비정상적 구조를 깨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핵심 퍼즐이다. IPO가 아니더라도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며, 회수된 자금은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에 재투자되어 생태계 전체의 유동성을 높인다. 벤처캐피털(VC)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거두어야 다음 펀드를 결성할 수 있으므로, 얼리 엑시트 활성화는 VC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기업 혼자 모든 혁신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대기업은 유망한 스타트업을 인수하여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외부에서 빠르게 수혈하고 신규 사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 대기업이 초기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인수할수록, 초기 창업자들은 ‘언젠가 우리 회사를 저 대기업이 인수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엑시트 로드맵을 가지고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한국 대기업들은 내부 개발을 선호하고 M&A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며 위험 회피적인 태도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스타트업의 엑시트 통로는 좁다. 또한 유니콘으로 성장해도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국내 대기업이나 사모펀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 성공적인 엑시트를 장담할 수도 없다.

얼리 엑시트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M&A다. 창업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막연히 유니콘만을 꿈꾸지 말고, ‘우리는 어떤 회사에, 어떤 가치를 인정받아, 언제쯤 매각될 수 있을까?’를 초기부터 구상해야 한다. 즉 초기부터 ‘팔릴 회사(Exit-Ready)’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잠재적 인수 대상(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예측하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들이 중요하게 보는 요소에 집중해야 한다. 창업 초기부터 IPO보다는 M&A를 염두에 두고, 성장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기업에 매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보다는, 사업이 성장 궤도에 있을 때 미리 엑시트를 준비해야 기업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단순히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보다는, 비전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인수자를 찾아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얼리 엑시트가 활발해지려면, 정책적 지원과 함께 문화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모태펀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스타트업 지원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엑시트에 대해서는 소홀한 감이 있다.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기업(특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여 M&A를 통한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기 쉽도록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내부 벤처 펀드 조성을 장려해야 한다.

‘창업–투자–성장–엑시트–재창업·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엑시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해야 한다. 창업자가 회사를 매각하면 ‘성공적으로 자원을 재배치한 합리적 선택’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얼리 엑시트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창업자를 ‘능력이 검증된 인재’로 존중하며, 재창업 시 유리한 투자 환경이 조성된다. 소규모 M&A를 통해 재기에 성공하거나 엔젤 투자자로 변신한 창업가들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홍보하여, 재도전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한다.

대기업이 내부 개발을 선호하는 ‘Make’ 전략에서 벗어나, 유망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Buy’ 전략을 기업 문화로 정착시키도록 정부와 시장이 유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기업은 혁신 속도를 높이고, 스타트업에는 확실한 엑시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IPO 일변도의 엑시트 구조를 탈피하고, M&A를 통한 얼리 엑시트를 보편적인 성공 경로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앙트러프러너와 투자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생태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