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치맥, 그리고 ‘AI 권력의 지도’
서울의 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과 치맥잔을 들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AI의 중심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참 듣기좋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젠슨 황의 미소 뒤에는 단순히 ‘호의를 베푼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발표된 뉴스 — GPU 26만 장 공급.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칩이 정부와 대기업, 클라우드 기업을 향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이야기이다.
겉으론 ‘AI 초강국을 향한 축하 선물’처럼 보이지만, 이 거대한 공급은 엔비디아의 전략적 포획에 가깝다. GPU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AI 시대의 전력(電力)과 통화(通貨)다. 황은 칩을 팔면서 동시에 AI 패권의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있다. 그가 우리나라에 보내는 26만 장은 칩이 아니라 ‘사슬’일 수도 있다. 엔비디아가 우리나라 AI산업을 묶는.
GPU 홍수의 그림자: 다섯 가지 역설
엔비디아 칩이 우리나라으로 밀려들면 우리는 세계 어디보다 빠르게 AI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이 가진 나라”가 반드시 “잘 쓰는 나라”는 아니다. 그 이면에는 다섯 가지 역설이 숨어 있다.
첫째, 기술 수명 리스크. AI 반도체는 1년이면 구식이 된다. 지금의 블랙웰이 내년엔 또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것이다. 26만 장의 GPU가 ‘금덩이’에서 ‘고철’로 변하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둘째, 플랫폼 종속 리스크. 엔비디아는 GPU만 파는 회사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API, 프레임워크까지 통합한 ‘AI OS(운영체계)’를 제공한다. 우리나라가 그 위에 모든 산업 AI를 구축한다면, 사실상 AI의 주권은 엔비디아 서버 룸에 있게 되는 셈이다. 셋째, 활용률 저하. AI 인력, 데이터, 알고리즘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GPU를 사들이면 창고에 쌓인 ‘철의 사치품’이 된다. 고가의 장비가 연구실에 먼지를 뒤집어쓰는 순간, 투자는 낭비가 된다. 넷째, 생태계 결핍. AI는 칩이 아니라 데이터, 알고리즘, 윤리, 신뢰가 경쟁력이다. 지금의 정부 지원은 장비 조달 중심이지만, 정작 ‘한국형 AI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하다. 다섯째, 유지비용 폭증. GPU 26만 장을 돌리려면, 전력과 냉각비가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른다. AI는 ‘지능의 혁명’이지만 동시에 ‘에너지 괴물’이다. 친환경이 아닌 ‘탄소 배출형 AI 산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26만 장의 GPU는 ‘기회’이자 ‘시험지’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AI의 소비국이자 디지털 식민지로 남게 된다.
진짜 AI주권은 칩이 아니라 ‘창조력’이다
AI 패권의 시대, GPU는 시작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진짜 AI강국으로 가려면, GPU로 모델을 돌리는 수준을 넘어 그 모델로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힘이지만, 아이디어와 실행은 주권이다. AI칩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AI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설계하고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는 나라만이 AI시대의 주인이 된다. 젠슨 황의 치맥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AI의 언어는 엔비디아의 칩 위에서 돌아간다.” 그 말이 영원히 사실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GPU를 ‘도구’가 아닌 ‘주권의 무기’로 바꿔야 한다. 26만 장의 칩은 선물이 아니라 물음표다. “이제, 당신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 대답이 우리들 AI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