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집 한 그릇이 던진 질문
마산의 오래된 골목에 있는 국밥집. 평생 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속을 데워온 조갑래 씨의 식당에 어느 날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찾아왔다. 동전을 세어 손자를 위해 한그릇만 시킨 할머니. 이를 본 주인은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으시네요. 우리 가게의 100번째 손님이십니다.” 공짜 국밥을 받은 할머니는 활짝 웃었고, 그 모습을 본 손자는 마음속에 무언가를 새겼다. 며칠 뒤 손자는 할머니 생신 날 직접 ‘100번째 손님’이 되어 국밥을 사드리려고 가게 앞에서 국밥집에 들어가는 손님을 세기 시작했다. 이를 알게 된 주인은 안스러운 마음에 단골들에게 전화를 돌려 손님을 불렀다. 할머니는 또다시 ‘100번째 손님’이 되었고, 식당 안은 박수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후 그 국밥집은 ‘행운의 백 번째 손님’ 이야기로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돈보다 마음이 더 큰 ‘마케팅’이 되었다.

사람들은 왜 그 집을 찾았을까?
맛집이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은 왜 허름한 국밥집으로 몰렸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국밥 한 그릇에는 ‘가성비’보다 ‘감성비’가 담겨 있었다. 요즘 소비자는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소비를 하고 있을까?

가성비의 귀환 — 계산이 빠른 시대
2024년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쇼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가성비(21.7%), 품질(21.7%), 가격(20.0%)이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합리적 소비’가 다시 중심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싼 것을 찾지 않는다. ‘지불한 만큼 만족하느냐’를 계산한다. 가격 비교 앱은 기본, 쿠폰과 멤버십 포인트는 생활의 일부다. 여기에 ‘타임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하다는 인식이다. 빨리, 편하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서비스가 새로운 가성비다. 즉, 가성비는 이제 싸서가 아니라 ‘현명해서’ 선택하는 소비다. 배달사업이 잘되는 이유이다.

감성비의 등장 — 마음이 계산을 이긴다
반면 감성비 소비자는 가격표보다 ‘느낌’을 본다. 조용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카페,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브랜드, 환경을 생각한 제품에 끌린다. 비싸도 ‘나를 표현해주는’ 소비라면 지갑을 연다. PwC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소비자들은 이제 가격보다 브랜드의 약속과 서비스 경험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정적 경험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단순한 물건보다 ‘나의 가치관을 닮은 경험’을 원한다. 이제 제품은 기능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연결되어야 팔리는 시대다. 요사이 기업이 ‘가장 싸다’보다 ‘가장 나답다’를 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의 소비 — 감성비가 얹힌 가성비
앞으로의 소비는 가성비와 감성비가 섞여 흐를 것이다. 불안한 경제 속에서는 여전히 가성비가 기본값이지만,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도 감정적 만족을 찾는다. ‘합리적인 가격에 나다운 경험’을 주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삼정KPMG는 이를 ‘리퀴드 소비’라 부른다. 가격·경험·효율·취향이 한꺼번에 작동하는 소비 구조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생필품에서는 가성비를, 취향과 관계의 영역에서는 감성비를 택한다. 즉, 필요 앞에서는 현실주의자, 행복 앞에서는 낭만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결국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 제품은 얼마인가?’가 아니라 ‘우리 제품은 어떤 감정을 남기는가?’ 국밥집의 100번째 손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데우는 브랜드만이 다음 행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