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Project Based System)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는 아니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연구행정제도이다. 사실 특별한 제도도 아닌데, 그동안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메뉴’에 올라왔었다. 연구자들이 항상 ‘불편한 사항’으로 지적했었다. 그래서 조금 관심있는 일반인들은 과학기술계가 마치 PBS 때문에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이번 정부에서 PBS는 없어질 전망이다. PBS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행정 부담을 지우고, 단기 성과에 치중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낳았다. 장기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주제를 설정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쫓는 소규모 연구 과제가 난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는 아마 새로운 제도를 내놓을 듯하다. 지금까지 연구지원 체계를 뒤돌아보고 다시 새 틀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보인다. 또 이번 정부는 2026년 정부R&D 예산을 연간 35조 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PBS라는 큰 제도도 손보고 정부R&D예산도 큰 폭으로 늘어나니까 과학기술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과학기술계는 무엇을 준비하는지가 궁금하다. 약 20~30년간의 과학기술계 틀에 익숙해져서 움직여온 연구리더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한다. 어떻게 스스로를 바꿀 것인지? 여러가지 대안이 논의되겠지만 필자는 그 중에 꼭 한가지를 주장하고 싶다. 연구계에 새로운 젊은 리더들을 찾아내서 이들에게 대형연구사업단을 책임지고 운영하게 하자 라는 주장이다. 대형과제를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리더를 찾아서 이들이 대형 연구과제를 만들어가고 변화무쌍한 경제사회 상황에 맞추어 필요하면 연구과제를 피보팅하면서 쓸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을 갖도록 해야 겠다. 고민만 너무 오래 하지 말고 대형연구과제를 만들어 가면서, 그리고 수정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연구 리더십이 만들어진다. 리더십은 책을 읽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동안 작은 project 단위의 연구과제를 만들고 연구하고 이를 통해 논문쓰고, 재산권이 언제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특허를 양산해온 작은 리더는 많아졌다. 그런데 큰 리더는 만나기 어렵다. 가령 출연(연)의 어떤 연구기관장들도 미래를 준비하는 중간대 나이의 연구인력에게 필요한 조직역량을 키워주려는 이가 거의 없었지 않았나? 물론 필자의 주장이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제시되기는 어렵지만 현장에서 30여년동안 기술사업화를 위해 애쓰는 시간에 수집된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 한다.
마중물이라는 정부 R&D예산은 이제 세계 1위가 되었다. 과학기술계는 지금이라도 규모 있는 연구팀을 중심으로 대형 연구주제를 찾아서 기획하고 이를 장기 프로젝트 로 추진하면서 매년의 성과를 무엇으로 만들지를 고민하는 과정과 이를 실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른 예산을 줄여서 정부R&D예산을 대폭 늘려 놓았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과학기술계가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2~3년 지나면 잠재 경제성장률을 얼마라도 높여야 하지 않을까? 5년이지나면 산업계로 부터 정부R&D로 인해 매출도 늘고 신사업도 많이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10년동안 매년 100억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사용하면서 연구할 연구주제를 빨리 정하고 이들 연구집단을 법적으로 안정화시켜 주면서 연구의 자율과 연구의 책임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빨리 제도화시켜야 한다. 아직도 과학기술계의 연구자들을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과기부와 기획재정부의 시각은 집어던져야 한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다가 넘어질 것 같아도 손을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쓰러질 것 같다고 뒤에서 계속 잡고 있으면 다른 나라 연구팀들이 옆을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