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이 35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은 기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 더해 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PBS(책임운영비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정책 방향도 얼마전에 발표됐다. 이는 단순한 예산 증가와 제도 개편 그 이상이다. 기술사업화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2027년이 머리에 그려진다. 즉 “엄청나게 다양한 작은 기술이 쏟아져 나올 텐데 지금의 기술사업화 관련 제도적 환경이 적합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이 시장에 들어가 가치로 전환되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바꾸지 않으면(Throughput) 안된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잠재경제성장률이 낮는 것도 사실 기술을 가치로 만드는 전환과정의 비효율이 있었지 않았나? 자문해본다.

정부예산이 늘어나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책무가 주어진다. "성과를 증명해야 할 책임"과 "예산 구조에 맞는 전략과 실행(Throughput)의 재설계"이다. 그동안 정부R&D는 결과보다는 투입(Input) 중심, 활용보다는 보고서 중심, 시장보다는 논문과 특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산이 늘어도 국민들은 묻는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냐”고. 기술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아무리 정부R&D 예산이 늘어도 마중물의 역할을 못하면 그건 곧 정점(頂點)이자 한계(限界)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기술사업화를 이렇게 정의해왔다.
"기술은 실험실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야 한다. 논문이 아니라 납품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기술은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겠다는 고객이 등장하는 것이 진짜 목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진짜 변곡점이다. 예산이 늘었으니 과제 하나 더 따자, 보고서 한 줄 더 쓰자는 유혹에 빠질 때가 아니다. 기술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부터 다시 짜야 할 때다.

기술사업화 전략,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첫째, R&D 기획 단계부터 '사업화 가능성'을 평가 지표에 넣어야 한다. 지금처럼 '기술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팔릴 수 있는가’를 함께 판단해야 한다. 기술기획자와 시장기획자가 분리돼선 안 된다. R&D 초기 단계에서부터 고객 지향적 구조가 들어와야 한다. 연구자가 시장기획자에게 도움을 받거나, 실제로 연구자가 시장기획기능을 학습하면 가능하다.

둘째, 기술을 흩뿌려라. 단일 허브가 아닌, 다중 바큇살 구조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제안한 ‘다중 바큇살 생산기지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특정 기술이 단일 지역이나 산업군에만 집중돼선 안 된다. 원천기술이 있다면, 이를 다양한 산업과 지역에서 응용하고 실증할 수 있는 ‘스포크(Spoke)’형 산업 거점이 필요하다. 기술이 흘러야 사업화도 이루어진다. 어떻게 알릴 것인가? 어떻게 같이 고민할 것인가? 오이마켓(www.technovalue.com)에서 중견기업들을 만나보는 것이 한가지 길이다.

셋째, 공공기술의 창업지원제도와 기술 이전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지금은 좋은 기술이 있어도 창업하려면 넘기 힘든 절차와 규제가 많다. 여러 제도들이 발목을 잡지만 이를 없애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전을 위한 별도의 조직이 ‘중개’가 아닌 ‘공동 사업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기술이전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

넷째, PBS의 폐지를 기술사업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PBS는 연구자가 시장을 피하게 만든 구조였다. 예산을 따야 하고 성과급을 받는 구조에서는 PBS가 작동하지만 이 때문에 돈버는 장기성과보다 논문되는 단기성과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PBS가 사라지면 연구자는 비로소 ‘왜 이 연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자극은 기술의 사업화를 가속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정부R&D 예산이 35조원으로 늘어나고 원하는 연구제도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과학기술계의 정점을 만들지, 아니면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지를 인지해야 한다.
시장 중심, 사업화 중심, 다면성 기술개발들을 생각하면서 새역사의 첫 페이지를 다시 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