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촉발시킨 관세전쟁으로 전 세계 주가는 폭락하고,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을 우려한 국민들이 물건 사재기에 나서는 등 미래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스레드업'의 주가는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알리며, 미국 '해방의 날'을 선포한 직후 31%나 폭등했다. 향후 중고거래 시장이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소비재에 대해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 안에 의류와 장난감 등 많은 소비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현금화'하려는 사람들과 좋은 제품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실 중고거래는 역사가 상당히 긴 비즈니스모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전문 플랫폼이 등장하고, 거래 품목이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농기구, 육아용품, 중고차, 의류와 같은 일상용품부터 명품, 보석, 고가구, 미술품, 공연 티켓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쌓아둔 책을 중고 서점에 팔거나, 안 입는 옷을 앱에 올려 판매하고, 희귀한 스니커즈나 콘서트 굿즈를 파는 일도 이제는 흔하다. 누군가에게는 짐이 되어버린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제공하며, 중고거래는 어느새 '버리는 대신 팔고, 싸게 사는 대신 잘 사는' 방식으로 우리의 소비문화를 바꿔 놓고 있다.
단순히 물건 하나를 사고파는 행위가 아니라, 검수, 정품 인증, 등급 분류, 글로벌 배송까지 해결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거듭난 것이다. 소위 '리커머스(Recommerce)' 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리커머스는 '리버스 커머스(Reverse Commerce)'의 줄임말로 새롭게 진화된 중고거래를 일컫는다.
개인 간의 거래였던 중고시장은 플랫폼 기반의 신유통 산업으로 재탄생하였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특히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가치 소비, 환경 의식, 희소성 중심의 소비 트렌드는 리커머스 산업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중고 거래 플랫폼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리투아니아의 빈티드, 미국의 포쉬마크, 리얼리얼, 오퍼업, 프랑스의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영국의 디팝, 일본의 메루카리, 싱가포르의 캐러셀 등이 있다. 또한 한국의 번개장터는 국내와 해외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선 대형 유통업계까지도 중고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무신사, 코오롱FnC, 신세계사이먼, 현대백화점, 쿠팡, 11번가, 현대홈쇼핑 등이 앞다퉈 '중고·리퍼' 사업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2021년 컨소시움을 형성해 원조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를 인수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 리서치 회사 맥시마이즈에 따르면, 글로벌 리커머스 시장 성장세 또한 매우 가파르다. 미국 리커머스 시장은 2024년 기준 200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2029년에는 약 29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전체 리커머스 시장은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2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미국, 유럽 등은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리커머스를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순환형 소비사회'라는 목표 아래, 재사용 촉진법, 디지털 세금 간소화, 스타트업 보조금 등 간접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유럽연합은 2020년부터 순환 경제 전략(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통해 중고 거래와 재사용 산업을 공식적인 성장 산업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주정부 차원에서 친환경 기업에 인증 제도와 조달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연방 정부는 리커머스 기반 환경정책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리커머스 기업에 세제 감면, 투자 보조금, 디지털 제품 여권(DPP)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산업화를 촉진하고 있다. 유럽 리커머스 시장은 2023년 기준 5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이 역시 단순 소비를 넘은 정책적 접근의 결과다.
이처럼 리커머스는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지속가능성, 환경, 청년 일자리,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정책 목표와 맞닿아 있다. 단기적 열풍이 아닌 구조적 산업 전환의 흐름이라는 점에서, 한국 역시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중고'라는 단어에 담긴 기존 인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리커머스는 더 이상 '싸게 사는 거래'가 아니라, 새로운 수출 산업이자 디지털 기반의 무역 채널, 그리고 청년 세대의 새로운 기회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팝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굿즈 시장은 그 가능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종된 앨범이나 포토카드 하나가 해외에서 수십 달러에 거래되고, 전 세계 팬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중고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플랫폼은 이들을 연결하고, 국경을 넘어 수요와 공급이 맞닿는 새로운 유통망이 되었다.
K-팝 굿즈는 이 변화의 한 사례일 뿐이다. 콘텐츠 산업과 결합한 리커머스는 고부가가치 수출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민간의 자율성과 플랫폼의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앞장서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중고=저가', '리커머스=비공식'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깨야 한다.
비즈니스를 떠나 리커머스의 중요성은 재화의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 쓰지 않는 중고제품이 어떤 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하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건의 가치와 수명이 한 번의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N차 거래를 통해 시장에 다시 투입되어 순환되고 그 가치와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너무 쉽게 버려지는 현대 사회에서 중고거래는 경제적 역할에 이어 환경적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리커머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리커머스 산업은 내수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소비 트렌드, ESG 경영 확대, 무역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외화 창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중고거래라는 이름으로 치부하기엔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 매우 크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비'에서 '한 번 더 쓰며 가치를 높이는 소비'로의 전환, 이 변화가 산업 구조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재활용'이 아니라 '재산업화'의 대상이 되었다. K-콘텐츠 기반 굿즈만이 아니라, 한국의 중고 전자기기, 의류까지 리커머스를 통해 새로운 수출 카테고리로 확장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K-팝 관련 중고 굿즈 수출은 전년 대비 약 46% 증가했다. 글로벌 리커머스 플랫폼에서는 K-팝 관련 검색량이 2년 만에 2배 이상 늘었고, 포토카드 하나가 수십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시작은 K-팝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중고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새로운 가치를 다시 봐야 할 때다. 과거 '무역 강국'의 명성을 리커머스로 되찾아야 한다. 기업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이제 정부의 시간이다. 리커머스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관세 문제 등 불합리한 걸림돌을 제거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리커머스가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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