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마리안느 슈퇴거(오른쪽)와 마가렛 피사렛 간호사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 끝에 붙어 있는 섬이다. 경치가 빼어나긴 하지만 크기가 작고 이렇다 할 특산물이나 명승고적도 없으나 1916년 2월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소록도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감금, 폭행, 강제 노역, 학살, 자녀 격리, 불임수술 등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아 한센인들에게는 악명 높았다.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TV 다큐멘터리, 잡지 르포기사 등으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소록도를 아름답고 따뜻한 곳으로 기억하게 만든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 슈퇴거(한국식 이름 고지선)와 마가렛 피사렛(한국식 이름 백수선)이다. 수녀로 잘못 알려졌으나 가톨릭 재속회(在俗會)인 그리스도왕시녀회 소속 평신도다. 환자와 주민들에게는 각각 큰할매와 작은할매로 불렸다.
마리안느는 1934년 오스트리아 티롤주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1947년 성당 주일미사에 참석했다가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신부의 강론을 듣고 먼 나라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결심했다. 1935년 폴란드에서 의사의 딸로 출생한 마가렛은 1939년 소련군이 폴란드 동부를 점령하자 가족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다.
여성직업학교를 다니던 마리안느는 마가렛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간호 보조업무를 하다가 병원 임시 직원 마가렛을 만났다. 둘은 나란히 인스부르크 간호학교에 들어가 간호사가 됐고, 그리스도왕시녀회에도 가입했다.
한국 땅을 먼저 밟은 것은 마가렛이었다. 그리스도왕시녀회 소속 간호사로 1959년 파견돼 경북 왜관과 전북 전주 등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봉사하다가 1961년 서울 혜화동에 있던 가르멜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건강이 나빠져 중도하차하고 소록도에서 10일 머문 뒤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마리안느도 함께 한국 파송을 지원했으나 체력이 약해 그리스도왕시녀회의 허락을 얻지 못했다. 프랑스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경험을 쌓은 뒤 1962년 2월 24일 소록도에 들어와 영아원에서 아기들을 돌봤다. 1965년 국립소록도병원 조직 개편과 함께 귀국했다.
둘은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만났다. 1966년 벨기에의 한센인 구호단체 다미안 재단(19세기 미국 하와이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선종한 벨기에 출신 신부의 이름을 땄다)이 한국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와 협정을 맺고 소록도병원 환자들의 재활 수술 지원에 나서자 그해 6월 다시 입국했다.
그때부터 환자와 아기들을 돌보는 한편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에 도움을 요청해 후원금과 의약품 등을 지원받았다. 1973년에는 정신병동을 건립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그리스도왕시녀회가 보낸 생활비도 아껴 쓰며 남는 돈을 환자들의 간식비나 퇴원 환자들의 차비로 건넸다고 한다.
한센병은 불치병이 아니고 유전되거나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잘못된 의학 상식 탓에 편견과 차별이 심했다. 더욱이 피부 병변을 유발하는 증상 때문에 대부분 환자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40여 년을 이들과 함께 지내며 상처받은 마음까지 치유하려고 애썼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떠나는 날까지 감명을 남겼다. 칠순을 넘기며 환자들을 돌보기 힘들어지자 짐이 되기 싫다면서 2005년 11월 21일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조용히 귀국한 것이다. 가져간 짐은 입국할 때 들고 온 낡은 가방이 전부였다. 모국 생활은 곤궁했다. 집도 없었고 국가에서 주는 연금도 최저 수준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소록도병원 성당에서 “한국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돕겠다”고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2016년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제2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나올 수 있도록 꼭 와 달라”고 간청하자 11년 만에 방문했다. 치매를 앓던 마가렛은 장시간 비행을 견뎌내기 어려워 동행하지 못했다.
모처럼 소록도를 다시 찾은 뒤에도 마리안느는 “우리가 한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인데 언론에 나가면 한 일보다 높이 평가받는 것 같다”며 기자간담회나 언론 인터뷰 등을 극구 사양했다. 그해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주어졌다.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감독 거스 히딩크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들의 감동적인 삶은 영화, TV 다큐멘터리, 음악극 등으로 꾸며졌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국민포장,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 호암상(사회봉사부문), 보건사회부와 대한간호협회 감사패 등을 받았으나 사양한 상이 더 많았다.
2019년 3월 고흥군 소양읍에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이 문을 열어 이들의 사진과 쓰던 물건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리안느·마가렛선양사업추진위원회도 발족해 2021년부터 고흥군과 함께 ‘마리안느·마가렛 봉사대상’을 시상하고 있다. 마가렛은 2023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오스트리아의과대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