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기로 매일을 선택한 해였습니다. 정답의 시대에서 통찰의 시대로, 우리 사회가 반세기 넘게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왔던 '학벌'이라는 성벽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밑바닥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구글은 신규 채용의 약 15%를 학위 무관 채용으로 진행했으며, IBM은 이미 2019년부터 전체 채용의 절반 이상을 4년제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아마존, 애플, 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명문대 졸업장'보다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적 사고'를 갖춘 인재를 찾아 나선다는 소식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실험이 아닌, 산업계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 원인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지능'이라고 믿어왔던 것, 즉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능력은 이제 인공지능이 단 몇 초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생성형 AI가 출시된 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AI는 변호사 시험, 의사 국가고시, CPA 시험 등 고도의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시험들에서 상위 10% 안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학 강의실에서 기성 지식을 암기하고, 과거의 문제 유형을 반복 학습하며, 정해진 정답을 맞히는 훈련만 거듭한 인재들이 초 단위로 진화하는 AI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냉정하게 말해 제로에 가깝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학과의 2025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적인 암기식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의 업무 수행 능력이 AI 도구를 활용하는 비전공자들에게 역전당하는 사례가 금융, 법률, 회계 분야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은 고장 났다"라는 탄식은 단순한 회의론이나 비관론이 아니라, 산업의 최전선에서 들려오는 생존의 비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파도는 소위 '사' 자 돌림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거세게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법률 판례 수천 건을 분석하고, 회계 장부의 오류를 검토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일은 AI가 가장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영역입니다.
맥킨지의 2025년 보고서는 법률 서비스 업무의 약 44%, 회계 업무의 약 50%가 현재 기술 수준의 AI로도 자동화 가능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미국의 대형 로펌들은 주니어 변호사가 담당하던 계약서 검토, 판례 조사, 증거 자료 분석 등의 업무를 AI 시스템으로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 규모를 30% 이상 축소했습니다. 회계법인들 역시 AI 기반 감사 시스템 도입으로 수백 명의 감사 인력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AI에 의해 업무 영역을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은 학위라는 종이 한 장이 보장해주던 '평생직장' '안정된 미래 라는 신화가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전문직이 되기 위해 투입한 시간과 비용입니다. 평균적으로 법조인이 되기까지 대학 4년, 로스쿨 3년, 변호사 시험 준비 1~2년, 총 8~9년의 시간과 수억 원의 교육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시간 투자한 핵심 역량이 AI로 대체 가능하다면, 이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체의 자원 낭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2020년부터 사지선다형 객관식 중심의 대입 시험인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입학공통테스트'로 전환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험은 단순 암기가 아닌 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며, 정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제시하여 학생들의 논리 전개 과정과 사고의 깊이를 측정합니다.
싱가포르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 시험에서 순위를 폐지하고 개별 학생의 성장 과정을 평가하는 '역량 기반 평가'를 전면 도입했습니다. 핀란드는 이미 2016년부터 현상 기반 학습을 교육과정에 통합하여 교과목의 경계를 허물고 실제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교육부가 2024년에 발표한 '2028 대학입시 제도 개편안'에서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비중을 일부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완전한 폐지 시점은 2040년으로 잡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후입니다. AI가 6개월마다 성능을 두 배로 향상시키는 시대에, 15년이라는 시간은 거북이걸음보다도 느린 것이 아니라 사실상 멈춰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 구조를 형성하는 관료 조직입니다. 여전히 학벌과 고시 합격 순위가 서열의 절대 기준이 되는 공무원 사회에서는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기는커녕,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 보호하려는 관성이 지배적입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주체들 자신이 구시대 교육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옹호자인 상황에서, 근본적인 교육 개혁을 기대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특히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AI와 싸워 이기려 하는 것은 굴착기를 앞에 두고 삽질 시합을 하자고 덤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AI를 경쟁자나 위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수십 배, 수백 배로 증폭시켜주는 유능한 '비서'이자 '도구'로 활용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MIT 미디어랩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공동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인재들은 세 가지 공통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디렉팅 능력입니다. 단순한 업무 수행은 이제 AI의 몫입니다. 인간은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어떤 AI 도구를 어디에 배치할지 결정하며, 여러 AI 시스템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혹은 '영화 감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할 때 과거에는 한 사람이 시장 조사부터 카피라이팅,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생성형 AI에게 시장 분석을 맡기고, 비주얼 콘셉트를 요청하며, 데이터 분석 AI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도구를 '언제, 어떻게, 왜' 사용할지 판단하고,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질문력 입니다. AI의 성능은 질문의 수준에 정확히 비례합니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평범한 결과물을 얻고, 어떤 사람은 탁월한 결과물을 얻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질문의 질입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효과적인 프롬프트(AI에게 내리는 지시)를 작성하는 능력이 업무 생산성을 평균 40% 향상시켰습니다. 단순히 "마케팅 계획을 작성해줘"라고 묻는 것과 "30대 직장인 여성을 타깃으로, 친환경 가치를 강조하면서, 월 예산 500만 원 이내에서 실행 가능한 3개월 짜리 소셜미디어 마케팅 계획을 작성해줘. 각 단계별로 예상 도달률과 전환율도 포함해줘"라고 구체적으로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필요한 정보를 구조화하는 능력, 그리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 암기나 정답 맞히기로는 절대 길러지지 않는 능력입니다.
검증력 입니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유능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즉 그럴듯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AI는 존재하지 않는 논문을 인용하고, 틀린 통계를 확신에 찬 어조로 제시하며, 논리적 비약을 마치 정확한 추론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2025년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서 주요 AI 모델들을 테스트한 결과, 전문적인 질문에 대해 평균 15~20%의 오류율을 보였으며, 특히 최신 정보나 전문 분야에서는 오류율이 40%까지 상승했습니다. 따라서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논리적 비약을 찾아내며, 윤리적·법적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책임 영역입니다.
검증력을 갖추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비판적 사고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정말 맞는가?",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이 정보의 출처는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키워야 할 능력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본질적 영역'으로 수렴됩니다. 저는 이것을 네 가지 핵심 역량으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질문력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힘입니다. AI는 주어진 질문에 답할 수 있지만, 정작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55분을 문제를 정의하는 데 쓰고 5분만 해결책을 찾는 데 쓰겠다"는 통찰은 AI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왜 이것이 중요한지,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입니다.
판단력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은 길을 선택하는 의지입니다. AI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확률적으로 최선의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우리 조직의 가치와 부합하는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판단력입니다.
통찰력은 흩어진 데이터 사이에서 숨겨진 패턴과 의미를 읽어내는 지혜입니다. AI는 패턴을 인식하는 데 탁월하지만, 그 패턴이 '왜' 나타났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인간의 맥락적 사고에서 나옵니다.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라피 수업과 컴퓨터 기술을 연결하여 아름다운 폰트를 가진 매킨토시를 만들어낸 것처럼,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창조적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통찰력입니다.
공감력은 기계가 절대 가질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따뜻한 연결입니다. AI는 감정을 분석하고 모방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공감하거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는 없습니다. 리더십, 교육, 의료, 상담, 예술 등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모든 영역에서 공감력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역량입니다. 특히 갈등을 조정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AI는 앞으로도 계속 똑똑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가 똑똑해질수록 인간다운 가치는 더욱 희소해지고 귀해집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처럼, 희소한 것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모든 사람이 AI를 통해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대에는, 보고서 작성 능력의 가치는 사라집니다. 대신 '어떤 보고서를 왜 써야 하는가'를 판단하고, '이 보고서가 조직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통찰하며, '보고서를 읽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소통하는' 능력의 가치가 급상승합니다.
따라서 우리 교육은 근본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학위라는 낡은 껍데기, 암기와 정답 맞히기라는 구시대적 방법론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합니다. 대신 질문하고, 탐구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문제 기반 학습, 협력 학습 등 이미 효과가 검증된 교육 방법론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니?"라고 묻기 전에 "오늘 학교에서 어떤 재미있는 질문을 했니?",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했니?"라고 물어야 합니다. 정답을 맞혔을 때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했을 때, 실패를 통해 배웠을 때, 친구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했을 때 진심으로 칭찬해야 합니다.
AI라는 강력한 비서를 능숙하게 부리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더 가치 있는 일을 도모하는 주체적인 인간. 기계는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고, 통찰하고, 공감하는 인간. 그것이 바로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정답이 없는 시대의 진정한 정답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긴 글의 끝마다 잠시 멈춰 서서 함께 숨을 고르듯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은 문장으로,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