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에 설치된 종이팩 분리배출함 안에 종이팩이 담겨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서모씨(34)는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에서 250㎖ 두유 한 팩을 꺼내 마신다. 다 마신 뒤에는 두유팩을 헹궈 말려두지만,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아파트 분리배출 날이면 늘 고민에 빠진다. 종이류에 버리자니 코팅 부분이 눈에 띄는 등 전체가 종이로만 만들어진 것 같진 않고, 다 모아서 주민센터에 가져다주자니 번거롭다. 결국 서씨는 두유팩을 종이류에 버리기도, 일반쓰레기로 버리기도 한다.

서씨는 종이팩을 어디에 버려야 했을까. 답은 ‘종이류’도 ‘일반쓰레기’도 아니다. ‘종이팩 분리함’에 따로 버려야 한다. 폴리에틸렌(PE)필름이 덧대어 있는 소재기 때문에, 분리배출을 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분리수거장은 종이팩 분리배출함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종이팩을 두고 고민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올해 안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아파트에 종이팩 전용 분리배출함이 설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2026년부터 전국 공동주택에서 종이팩 분리배출을 시행할 계획인가’라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시범사업을 한다고 하길래 전면 시행하자고 했다. 시범이 아니라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답했다.

종이팩은 최고급 펄프로 만들어진 재활용 가능 자원이지만, 그간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못했다. 종이팩 재활용률은 모든 재활용 소재 가운데 가장 낮은 19%(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그친다. 기후부는 연내 종이팩 분리배출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분리배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분리배출장을 찾았다. 한쪽에는 종량제 쓰레기 배출함이, 다른 한쪽에는 음식물쓰레기통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 통로로 들어가면 캔, 비닐, 투명 페트병, 플라스틱, 종이상자 등을 분류하는 공간이 나온다. 차이점은 분리배출장 입구에 연두색 종이팩 분리배출함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팩/멸균팩’이라고 적힌 배출함 앞에 “종이팩은 전용 수거함에 넣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분리배출함은 비영리단체 숲과나눔이 서울시·서초구청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설치한 것이다. 이 아파트에는 지난해 5월부터 배출함이 설치돼 반년 넘게 종이팩 분리배출이 이뤄졌다. 배출함 안에는 우유팩과 두유팩, 주스팩, 단백질 음료 팩 등이 담겨 있었다. 패스트푸드점 종이컵이나 담배갑처럼 종이팩이 아닌 재질이 간간이 섞여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종이류와 종이팩을 혼동해서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재 서초구 내 60여개 아파트에는 이런 종이팩 분리배출함이 설치돼 있다. 숲과나눔의 허그림 캠페이너는 “올해 하반기 서초구에서만 12t의 종이팩을 수거해 자원으로 순환시켰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동주택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은 서울 노원구를 비롯해 충북 청주, 전북 전주, 세종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종이팩은 왜 종이류와 따로 버려야 할까. 종이팩은 크게 지붕 모양의 일반팩과 육면체 형태의 멸균팩으로 나뉜다. 일반팩에는 주로 우유가, 멸균팩에는 두유나 주스 등이 담긴다. 일반팩은 종이 안팎에 폴리에틸렌(PE) 필름을 덧댄 구조로, 펼치면 안쪽이 흰색이다. 멸균팩은 구조가 더 복잡해 PE-종이-PE-알루미늄-PE-PE 등 여섯 겹으로 구성돼 있으며, 펼치면 안쪽면이 은색이다.

이처럼 복합소재로 만들어진 종이팩을 종이류로 배출하면 대부분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다른 쓰레기와 함께 태워진다. 서울환경연합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민 2명 중 1명은 멸균팩을 종이류로, 4명 중 1명은 일반쓰레기로 버리고 있었다.

현재는 종이팩을 제대로 분리배출하려면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주민센터 등 지정된 거점 공간에 직접 가져다줘야 한다. 하지만 과정이 번거롭다 보니 종이팩 재활용률은 20% 이하에서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캔(92%), 유리병(80%), 페트병(88%)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환경단체들이 실제 분리배출이 이뤄지는 공동주택에 종이팩 전용 배출함 설치를 요구해 온 이유다.

종이팩 재활용 과정에서는 한 단계 더 세밀한 분류가 필요하다. 일반팩에는 습강지가, 멸균팩에는 일반지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동 분류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 있다.

지난달 16일 방문한 세종시의 A선별장에서는 일반팩과 멸균팩을 광학선별기로 분류하고 있었다. 종이팩 무더기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다 선별기를 통과하자, ‘푸쉭’ 하는 소리와 함께 멸균팩과 일반팩이 서로 다른 컨베이어 벨트로 갈라졌다. 레이저를 쏴 알루미늄 반사 여부를 감지한 뒤 멸균팩은 바람으로 밀어내고, 일반팩은 그대로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기후부는 이 같은 광학선별기를 더 많은 선별장에 설치할 수 있도록 종이팩 제조·수입업체와 지원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종이팩 광학선별기가 설치된 곳은 전국에 4곳뿐이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 포장으로 대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기 전에 종이팩 재활용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숲과나눔이 2024년 발간한 ‘종이팩 자원순환 시스템 개선 정책 제안’ 보고서는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기후변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종이팩이 음료뿐 아니라 세제,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의 포장재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유 소비 감소로 일반팩 출고량은 줄어드는 반면, 멸균팩 출고량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맹학균 기후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종이팩 제작 업체 등과 협의해 멸균팩 생산 단계부터 재질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며 “생산·수거·배출·재활용 등 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뒤 종이팩을 공식 분리배출 항목으로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