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만에서 출발한 애피어(Appier)가 ‘마케팅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실적과 외형을 키우고 있다. 고객 데이터 기반 개인화가 광고·마케팅의 표준이 되는 흐름을 타며 성장했지만, 개인정보 보호 규율이 촘촘해지고 AI 광고에 대한 표시 의무까지 예고되면서 이제 경쟁의 초점이 ‘성능’에서 ‘신뢰’로 옮겨가고 있다.
애피어는 광고기술(AdTech)과 마케팅기술(MarTech)을 결합한 AI 기반 SaaS 기업을 표방한다. 회사는 “지능형 소프트웨어로 AI를 쉽게 만든다”는 비전을 내세웠고, 2012년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치한 위(Chih-Han Yu)가 동료들과 거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현재는 전 세계 17개 거점과 2000곳이 넘는 고객사를 보유했다고 공시·안내한다.
성장세는 숫자에서 드러난다. 애피어는 2025회계연도 3분기(공시 기준) 매출이 114억엔으로 전년 대비 26% 늘었고, 영업이익은 10억3000만엔으로 ‘첫 10억엔 돌파’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지역별로 북동아시아(NEA)와 미국·유럽(EMEA) 수요가 동시에 늘었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전략은 ‘AI 에이전트’와 생성형 AI로 모아진다. 애피어는 최근 ‘소프트웨어-투-소프트웨어 에이전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광고 집행, 개인화, 데이터 활용을 에이전트 형태로 자동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에는 프랑스의 생성형 광고 크리에이티브 기업 AdCreative.ai 인수 계약을 발표하며 생성형 AI 기반 제작·최적화 역량을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다만 마케팅 AI의 확산은 구조적으로 ‘데이터 의존’과 맞물린다. 개인화 고도화는 곧 더 많은 데이터 수집·결합·분석을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PIPA) 시행령 개정 등으로 동의의 실질성, 처리 투명성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성장만’ 강조한 마케팅은 규제 리스크와 소비자 반감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생성형 AI 광고는 또 다른 변수다. 딥페이크·허위 정보 논란이 커지면서 한국 정부는 2026년 초부터 AI로 만든 광고에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외신은 전했다. 애피어처럼 생성형 광고 제작·최적화를 성장축으로 삼는 기업은 기술 투자 못지않게 ‘표시·검증·책임’ 체계를 제품에 내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애피어는 신뢰 확보를 위해 보안·프라이버시 인증과 규정 준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회사 ‘트러스트 센터’는 ISO 27001(정보보안)과 ISO 27701(프라이버시) 인증, 정기 보안 점검 등을 공개했다. 이런 공개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선 ▲고객사 데이터의 수집·결합 경로 ▲모델 학습·추론 단계에서의 개인정보 처리 ▲광고 성과 측정의 설명 가능성 ▲생성형 크리에이티브의 저작권·표시·오인 가능성 관리가 함께 요구된다.
대안은 ‘마케팅 성과’와 ‘규정 준수’를 분리하지 않는 제품 설계다. 애피어 같은 마케팅 AI 기업은 첫째, 기본값을 최소수집·목적제한 중심으로 두고 고객이 설정을 바꿀 때만 범위를 넓히는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 둘째, 광고·개인화 결과가 어떤 데이터 신호에 기반했는지 고객과 최종 이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감사 로그를 표준 기능으로 제공해야 한다. 셋째, 생성형 광고는 워터마크·표시 자동화와 함께 금지 표현·인물 오인·허위 주장 차단을 사전 필터로 묶어 책임을 제품 수준에서 분산해야 한다. 규제 강화 국면에서 ‘잘 만든 AI’의 기준은 정확도보다 투명성과 통제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