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법적 목표로 명시한 최초의 기후입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선언적 목표에 비해 산업적 세부전략과 연계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포장·플라스틱 산업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약 3.6%를 차지하며, 원재료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원이 광범위하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는 산업별 세부 목표 대신 “전 부문 감축”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머물러 있다.
결국 산업은 정부의 규제 이전에 자발적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이며, 그 구조는 법과 시장의 균형 위에서 작동한다. 기후입법의 공백은 곧 산업 스스로의 전환책무로 이어진다. 특히 포장산업은 제품-소재-폐기 간의 순환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탄소중립 시대의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규제의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질서의 신호다.
탄소감축과 순환경제: 포장산업의 구조전환 과제
포장산업은 소비재산업과 직결되는 대표적 탄소집약 구조다. 원료 생산, 인쇄, 라미네이션, 수송, 폐기 전 과정에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다. 순환경제(Ellen MacArthur Foundation, 2018)의 개념은 “자원의 설계단계부터 폐기 최소화를 내재화하는 경제시스템”을 의미하며, 포장산업이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패러다임이다.
한국은 2022년 이후 ‘재활용 가능 포장재 의무화’, ‘포장재 감량 지침’ 등을 도입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여전히 약하다. 기업의 선택이 아닌 의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 포장기업은 탄소감축 설비에 대한 투자 부담이 커, 정부의 기술인증·금융지원 연계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원료-공정-회수’의 3단계 통합개혁이며,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인프라가 산업전환의 생명선이다.
포장소재의 생애주기(LCA)와 온실가스 관리체계
기후정책의 세계적 표준은 ‘LCA(Life Cycle Assessment, 전과정평가)’이다. EU, 일본, 독일 등은 포장소재의 원재료 채굴부터 폐기·재활용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포장산업은 기업별 LCA 기반 배출계산체계가 미비하다. 이는 규제 대응뿐 아니라 ESG평가에서도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LCA는 단순한 환경평가가 아니라 기술혁신의 기준선이다. 예컨대, 동일한 PET병이라도 바이오 PET와 재활용 PET의 탄소배출량은 최대 60% 차이를 보인다[주2]. 이런 데이터 기반의 기술전환이 없으면, 산업은 정책의 ‘수동적 피험자’로 남게 된다. 따라서 포장기업은 공정단계별 LCI(Inventory) 구축과 배출계수 개발을 서둘러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산업별 LCA 인증체계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재활용 정책의 법제화와 분리배출의 실효성
한국의 분리배출 제도는 1995년 ‘자원재활용법’ 제정으로 출발했으나, 30년이 지난 현재 그 한계가 명확하다. 국민 참여율은 높지만 재활용률은 60% 수준에 머문다. 핵심 원인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의 실효성 부족이다. 생산자는 포장재 사용량 감축보다 분담금 납부로 의무를 대체하고, 소비자는 ‘분리배출’이라는 명목상의 참여로 면책된다. 이 제도적 모순은 ‘순환경제법’ 개정 논의의 중심에 있다.
포장산업은 단순히 재활용 용이성 개선을 넘어,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전제형 디자인’을 의무화해야 한다. 즉, 법이 기술을 강제하고, 기술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분리배출의 실효성은 국민의 성실보다 법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