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재편한다. AI는 인간의 사고를 모사하고, 바이오기술은 생명의 한계를 다시 쓰고 있다. 그런데 기술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그 속도가 빠르다. 그 빠름에 비해 사회의 이해와 합의는 늘 한발 늦다. 기술은 미래를 열지만, 합의는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는 낯섦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특히 바이오기술은 생명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건드린다. 줄기세포, 유전자편집, 장기이식 같은 주제는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영향은 결국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이 기술들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질병을 고친다는 기대를 품게 하면서도, 동시에 윤리·안전·형평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 갑론을박’이다. 논쟁은 불편하지만, 합의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기술이 완성되기 전, 그리고 시장에 나오기 전에 충분히 토론해야 한다. 기술이 사회의 신뢰를 얻는 과정은 개발의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 한 사회가 기술을 받아들이는 힘은 기술의 수준보다 사회적 숙의의 깊이에 달려 있다.

투자자는 사회적 신호를 본다

많은 사람은 투자를 돈의 논리로만 본다. 하지만 투자자는 언제나 ‘미래의 가능성’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기술 그 자체보다 사회가 그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면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기술의 위험과 한계가 명확해지고, 규제의 방향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또 투자자가 의사결정할 때의 신호가 된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기준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사회적 저항이 크거나 법적 불확실성이 높으면 자본은 움츠러든다. 반대로 사회가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한 기술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고, 그 신뢰가 투자로 이어진다. 논의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투자를 이끈다. 그리고 사회의 수용성이 커질수록 그 기술을 받아들일 고객층, 즉 시장의 규모도 커진다. 자자들이 사회적 합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가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곧 그 기술의 시장이 이미 열리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학습하는 사회가 미래를 연다

미래의 기술사회는 과학자나 기업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이 기술을 이해하고, 함께 판단하는 ‘학습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AI, 바이오, 에너지, 기후기술 등은 모두 공공성과 윤리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술의 원리와 영향을 이해하고,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에서 기술이 뿌리내리는 방식이다.

사회적 학습과 합의가 없는 기술은 결국 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는다. 기술을 둘러싼 대화가 활발할수록 투자자는 더 명확한 신호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토론이 미래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미래를 믿는 투자, 논의에서 시작된다

기술은 속도로 세상을 바꾸지만, 사회는 방향으로 세상을 지탱한다. 우리가 미래를 낙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기준과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래야만 투자자도, 기업도, 시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진정한 진보로 만들기 위해선 “논쟁이 있는 사회”, “배우는 사회”, 그리고 “합의로 신뢰를 만드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미래를 믿는 투자는 결국, 미래를 함께 배우고 논의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