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요즘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지갑을 여는 사람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둘이 함께 식사한 자리에서도 여성이 자연스럽게 계산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직장에서도 여성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책임 있는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이제 여성은 단순한 경제 활동 참여자를 넘어, 소비와 결정의 중심에 서 있는 경제 주체가 되었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거리와 일상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며, 여성의 자립성과 선택권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다.

질문은 남는다

하지만 이 변화의 한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되묻게 된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어디로 간 걸까? 남성이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회 속에서 그들의 역할과 위치가 과거와 같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학 강의실, 회사 회의실, 거리의 풍경에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한 것이라면 역할 교체라 하겠지만, 그 빈자리에 아무도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것은 역할 자체의 해체다. 사회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고정된 역할을 기대하지 않고, 개인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라진 자리, 떠맡은 생존

이제는 단순히 역할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더 이상 누구에게도 명확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져야 하지만, 사회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는다. 출산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젊은 세대는 연애나 결혼, 육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안과 리스크만 늘어난다. 이런 구조에서는 공동체적 삶보다 개별 생존이 우선되며, 누구도 서로의 인생에 기대기 어려워진다.

해외로 향하는 청년들

최근 고수익 해외 취업이라는 말에 이끌려 캄보디아 등지로 향했던 청년들이 납치·감금당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취업의 부작용이 아니라, 국내에서 더 이상 기회와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이 떠밀리듯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여기서는 답이 없다’는 체념이 만든 현실이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좌절과 탈출 시도를 외면한 채, 그 결과만 문제 삼는다. 이러한 사건은 단지 범죄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의 절박함이 구조적 위험으로 번진 사회적 경고다.

멈춰선 미래

삶은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그 설계 없이 생존만을 반복하고 있다. 사회는 각자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라고 요구하지만,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문제는 출산율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새로운 생명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타인과 인생을 공유하거나 공동체를 형성하려 하지 않는다. 지갑을 여는 손보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함께 설계할 손이다. 삶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만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공동체적 상상력 없이는 다음 세대로 건너갈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멈춘 이 자리에서,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개인의 생존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연대의 틀을 재구성해야 한다. 희망은 그렇게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토대를 강화해야 하며, 삶의 비용과 실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절실하다. 이 사회가 다시 미래를 품으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