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의 시대가 끝나고, 사고의 시대가 왔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산업구조의 대전환 속에서 대학의 존립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지식의 공장’이었다. 공학·의학·법학 등 각 분야의 학문이 산업 발전과 맞물리며, 교수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의 수집과 분석, 해석까지 수행하는 시대다. ‘전문지식을 얼마나 아는가’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엮어 문제를 해결하는가’가 중요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수십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교수의 지식이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 이미 7~8년 전부터 예고된 대학의 한계
대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미 7~8년 전부터 대학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해왔다. 그때만 해도 ‘대학 위기’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지난 2~3년 동안, 대학은 그동안 감춰왔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AI는 인간의 사고 일부를 대신할 만큼의 능력을 보여줬고, 이는 대학 교육의 본질—즉 ‘인간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결국 AI는 우리가 대학에 대해 품어왔던 의구심을 증명해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비판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대학의 위기는 명확해졌다.
■ 생존을 위한 피보팅, 사고의 도구를 가르쳐야
이제 대학은 생존을 위해 ‘피보팅(pivoting)’해야 한다. 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듯, 대학도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 변화는 단순한 학과 통폐합이나 커리큘럼 조정 수준이 아니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고의 방법’과 ‘생각의 도구’다.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능력이야말로 앞으로의 교육이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이다. 지금의 대학은 지식을 축적하게 했지만, 앞으로는 지식을 엮어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과 개편이 아니라, 교육 철학의 근본적 전환이다.
■ 15일자 중앙일보가 전한 미네르바 대학의 사례
이런 맥락에서 15일자 중앙일보에 소개된 미네르바 대학의 설립자 벤 넬슨(Ben Nelson)의 발언은 상징적이다. 그는 “AI 시대의 대학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생각의 도구를 다루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네르바는 교수 중심의 강의실을 없애고,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고 훈련 중심의 교육으로 설계되었다.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 모델은 단지 미국의 한 실험적 사례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대학 교육의 방향을 보여주는 징후다.
■ 그러나, 교수들은 준비되어 있는가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지금의 교수들이 과연 새로운 세대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학이 아무리 변화를 외쳐도, 교육의 주체는 결국 교수다. 그러나 교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연구 성과와 전문성을 근거로 임용된 이들이다. 그렇다면 ‘사고의 방법’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융합적 사고’를 훈련시킬 경험과 툴을 갖추었을까?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결국 대학의 개혁은 제도나 커리큘럼의 문제가 아니라, 교수 자신이 새로운 교육자로 피보팅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AI 시대의 교육 혁신은 기술 이전에, ‘가르치는 사람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 성역의 붕괴, 그리고 마지막 기회
이제 대학은 성역이 아니다. 과거의 권위와 관행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대학은 시장의 변화 속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에서 사고를 훈련시키는 플랫폼으로 변신하지 못한다면, 대학의 종말은 피할 수 없다. 벚꽃이 피는 순서로 문을 닫는 대학의 현실은 이미 시작된 예고편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대학이 스스로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의 교육’은 더 이상 대학의 몫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