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자동화 방식이 재무 등 백오피스 일자리에서 고객 대응 서비스 업무까지 대체하고 있다. 관련 아웃소싱 전문 시장이 큰 인도 등 일부 국가는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관련 파급 효과가 계속 커지고 있다.
AI 영향, "세계 일자리 4개 중 1개"
5일 국제노동기구(ILO)와 폴란드 국립연구소(NASK)와 지난 5월 발표한 '글로벌 생성형 AI 노출 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4개 중 1개의 일자리가 생성형 AI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해당 수치가 3개 중 1개로 증가한다. 특히 사무직이 자동화 압력에 가장 취약하다고 것으로 분석됐다.
사무 행정 및 업무 지원 직무는 생성형 AI 도입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평가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따른 하향식 자동화와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상향식의 AI 도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다. 전통적인 사무직의 입지는 전례 없는 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 사무 노동의 본질 자체를 재정의하는 구조적 변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ILO의 보고서에선 데이터 입력, 문서 서식 지정, 일정 관리 등 텍스트 및 규칙 바탕의 반복적 업무를 AI가 이미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고 판단했다. 사무직의 핵심 업무들이다. 해당 직군은 다른 직군보다 자동화 노출도가 높게 나타났다.
ILO는 "'노출'이라는 용어는 즉각적인 '실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해당 직무의 핵심 과업들이 기술적으로 자동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임금 정체, 직무 불안정성 증가, 궁극적으로는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전조"라고 덧붙였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충격파는 성별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며 불평등 구조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일자리의 4.7%가 최고 노출 범주에 속했다. 반면 남성 일자리는 2.4%에 그쳤다. 해당 격차는 고소득 국가에서 극적으로 벌어졌다. 여성의 경우 9.6%, 남성의 경우 3.5%로 나타났다. 여성이 사무 및 행정직에 집중되어온 노동 시장의 구조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HR 어시스턴트에서 HR 에이전트로
백오피스 자동화의 핵심 동력은 '에이전틱 AI' 기술의 발전이라는 분석이다. 프롬프트(이용자 입력)에 수동적으로 응답하는 기존의 AI 어시스턴트와 달리, AI 에이전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업무 환경을 인식한다. 업무 계획도 수립하고 행동에 옮긴다. 인사(HR), 재무, 법무 등 백오피스 기능 전반에 걸쳐 이른바 '엔드 투 엔드 자동화'를 가능하게 한다.
채용 업무에서 에이전틱 AI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과거 여러 단계에 걸쳐 인간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했던 채용 과정이 하나의 통합된 자동화 워크플로로 전환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직무 기술서를 분석해 최적화된 채용 공고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여러 채용 플랫폼에 게시한다. 이력서 데이터베이스를도분석하고, 복잡한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순위화하며 최적의 인재를 발굴한다. 입사 후보자 및 면접관의 일정도 확인해 자동으로 면접을 조율할 수 있다. AI 면접관은 초기 스크리닝 인터뷰를 진행하며 업무 적합도에 대한 분석도 제공한다.
글로벌 IT 컨설팅 기업 가트너가 지난 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의 HR 담당자의 82%가 향후 12개월 이내 에이전틱 AI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R 리더들은 에이전틱 AI가 2년 내 조직 전체 인력의 평균 9%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확대했던 HR 조직을 작년 말부터 감축하고 있다. 직원 문의 응대의 상당 부분을 AI 챗봇이 대체했다고 보도했다.
수천 번의 작은 자동화
직원 개개인이 주도하는 상향식 '그림자 자동화'도 조용히 확산하고 있다. 그림자 자동화는 기업의 공식적인 AI 도입 없이 직원이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I 번역, 요약, 문서 작성 도구를 일상 업무에 활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개인 수준의 광범위한 AI 활용은 사무 보조, 번역 지원, 회의록 작성 등 전통적인 지원 직무의 핵심 가치를 떨어트린다. 팀원 각자가 AI를 통해 스스로 문서를 요약하고, 해외 고객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회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게 되면서다. 이런 업무를 전담하던 주니어 직원이나 행정 보조 인력의 필요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수천 번의 작은 자동화'라고 불린다.
고객 서비스의 최전선인 컨택센터(이전 콜센터)도 생성형 AI가 대체하고 있다.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의 경우에는 지난해 자사의 AI 어시스턴트가 출시 첫 달 만에 전체 고객 서비스 채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30만 건의 대화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정규직 상담원 700명에 해당하는 업무량이다. 고객 문제 해결 시간은 기존 11분에서 2분으로 줄었다. 반복 문의율은 25% 감소하는 등 효율성 개선을 달성했다.
하지만 지난 5월 클라르나는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다시 인간 상담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클라르나의 세바스티안 시미아트코프스키 CEO는 "비용이 너무 지배적인 평가 요소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서비스 품질이 저하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이 원할 때는 언제나 인간 상담원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 업무 일자리를 AI가 대체하고 있지만 아직은 인간을 위한 업무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위기에 직면한 아웃소싱 산업의 종사자는 직무를 전환해 살길을 찾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 시장을 AI에 내준다. 대신 공감, 복합 문제 해결 등 인간 고유의 역량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챗봇의 대화 품질을 관리하는 '챗봇 매니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AI 트레이너', AI 시스템의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데이터 검수자', 자동화 프로세스의 윤리성과 효율성을 감사하는 'AI 프로세스 감사관'과 같은 새로운 역할이 아웃소싱 채용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직격탄 맞은 필리핀과 인도, 한국은?
글로벌 아웃 소싱 전문 산업을 이끄는 필리핀과 인도는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필리핀의 경우 해당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한다. 약 20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핵심 기간산 업이다. 인도의 아웃소싱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 이상이다. 국가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보고서에서 전문 아웃 소싱 산업(BPO) 부문이 직무 대체에 매우 취약하다고 명시적으로 경고했다.
과거 선진국 기업은 인건비 차이를 활용해 콜센터, 데이터 입력 등 업무를 필리핀이나 인도로 보냈다. 그러나 이제 그 업무는 더 이상 마닐라나 벵갈루루로 가지 않는다. 대신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 클라우드 서버로 보내진다. 노동 비용의 차익 거래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이제는 '인간 노동'과 '컴퓨팅 연산'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선 통신과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무 환경에서는 직원 주도의 상향식 자동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생산성 향상의 기회지만 고용 구조 재편이라는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 업체 '앨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한국 AI 컨택센터(AICC) 시장 규모가 2020년 약 4214만 달러에서 2030년 3억 5088만 달러로 연평균 23.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사무 환경에서는 직원 개개인이 주도하는 상향식 '그림자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을 사용해본 사람의 비율이 1년 동안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독 서비스 이용 비율도 3배 이상 늘어났다. 이용 분야는 단순 정보검색(81.9%), 문서작업 보조(44.4%), 외국어 번역(40%), 창작 및 취미활동 보조(15.2%), 코딩 및 프로그램 개발(6.3%) 순이었다.
출처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