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시기가 오면 과학기술계는 또 조급해진다. 일본은 왜 그렇게 많은 노벨 과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강철구 교수는 머니투데이 칼럼(2023.10.8)에서 그 이유를 “조급하지 않은 기초과학의 축적”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부국강병’을 국가 목표로 삼았고, 서구 과학기술을 도입해 자국화하며 산업의 토대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일본의 지도자들은 2차 세계대전에 패배의 원인을 ‘과학전(科學戰)의 패배’로 규정하고, 오히려 과학기술의 재건을 통해 국가의 재기를 모색했다.
일본의 강점은 기초과학에 대한 끈질긴 집념이다. 우리나라가 ‘개발(Development)’ 중심의 R&D 구조를 유지해왔다면, 일본은 ‘연구(Research)’ 중심의 장기 투자로 방향을 잡았다.
일본의 과학자들은 논문이나 성과보다 ‘탐구 과정’을 중시했고, 정부도 결과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하 1000m에서 중성미자를 관측한 ‘슈퍼 가미오칸데’ 실험이다.
수십 년의 시간과 수천억 원의 장비 투자, 그리고 묵묵히 연구를 이어온 과학자들의 인내가 결국 노벨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조급하다. 세계 2위 수준의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성과 중심, 단기 목표 중심의 연구 풍토가 여전하다.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치대한의대’로 몰리고,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공대에 입학했다가 다시 의대에 재도전하는 구조에서 기초과학의 씨앗은 자라기 어렵다. 초중고는 입시 학원으로, 대학은 취업 학원으로 변했다. 창의적 탐구보다는 정답을 외우는 능력이 평가받는다. 장기적 연구 철학이 설 자리가 있었던가?
강철구 교수는 “노벨상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170년의 축적의 결과”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는 ‘따라가는 과학’이었다면, 이제는 ‘앞서가는 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나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고 싶다. 이제는 ‘전체 틀 (FRAME)’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패스트팔로워 시절에는 남이 만든 좋은 ‘질’을 빠르게 복제해 값싸게 대량 생산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새로운 ‘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남이 해 놓은 것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이 양산이 가능한 형태로 증명될 때, 비로소 진짜 기술혁신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세상에 없던 신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철학은 산업뿐 아니라 R&D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연구는 성과를 쫓는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깊이를 축적하는 ‘지속의 경쟁’이 되어야 하고 ‘방향의 경쟁’ 이어야 한다.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오래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실패를 허용하는 제도, 그리고 ‘기초에서 산업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구자도 달라져야 하고, 연구비를 책정하는 정부와 공평한 배분을 전담하는 전문기관(?), 기업이 달라져야 한다. 전체 ‘틀(FARAME)’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예산을 줄이고 늘리는 단순한 사고로는 변화를 할 수 없다. R과 D를 분리하지 말고, ‘질의 창조’와 ‘양의 확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R&D 모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수행할 사람들이 모여 있고 제안하면 정부R&D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자. 이것이 진정한 ‘퍼스트무버’의 길이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과학의 미래다. 성과를 재촉하는 조급함 대신, 오랜 시간과 끈기를 축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 과학으로 노벨상을 기대해야 한다.
예산은 효율적인 시스템이 어느정도 완성이 되고 그 성과가 잘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될 때 늘려야 한다. 정부R&D연구비를 늘린다고 과학기술성적이, 산업의 성적이 잘 나올까? 새로운 ‘틀(FRAME)’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과학기술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