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벤구리온대 교수인 마이클 바엘리는 유럽 프로 축구 자료를 바탕으로 페널티킥 상황에서 선수의 심리를 연구했다. 데이터를 보면 킥하는 선수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3분의 1은 중앙, 3분의 1은 왼쪽, 나머지 3분의 1은 오른쪽으로 공을 찼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아낼 확률을 높이려면, 어차피 왼쪽, 오른쪽, 가운데가 같은 확률로 공이 오니까 좌우로 움직이지 않고 중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자료가 있음에도 92%의 골키퍼는 가운데를 지키지 않고 좌우로 몸을 움직였다. 바엘리 교수는 골키퍼가 ‘가만히 있다가 골을 먹으면 비난받을까 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철학과 잭 보엔 교수도 ‘멍청이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골을 허용하는 것보다 틀린 방향이라도 몸을 날리는 편이 훨씬 심적으로 덜 괴롭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실패하더라도 ‘그래도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중은 최선의 선택이지만 가운데 서서 골을 먹은 것보다, 골키퍼가 몸을 좌우로 움직여 실점한 것에 더 많은 격려를 해준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 원인과 전망을 면밀하게 살핀 후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정부는 설익은 대책이어도 향후 나타날 결과는 고려하지 못한 채 내놓게 된다. 국민의 대책 요구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가 쉽게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며 ‘샤워실의 바보’에 비유했다. 샤워실에서 갑자기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바보는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뜨거운 물을 튼다. 그러다 뜨거운 물이 나오면 너무 뜨거워서 또다시 반대 방향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제대로 샤워는 못 하고 감기에 걸리고 화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이면서 욕을 먹는 것보다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노력은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기꺼이 샤워실의 바보가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 조직은 아무런 성과 없이 손해를 입히더라도 단지 열심히 한다는 것을 근면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행동 편향(action bias)’을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록 잘못된 것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아무거나 하려는 심리’가 바로 행동 편향이다. 실제로 조직에서 행동 편향은 종종 ‘뭐라도 열심히 하는 성실함’으로 오인되고, 어물쩍 책임을 회피하는 면피용 선택으로 꽤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래서 새로 들어선 정권, 새로 바뀐 장관, 갓 승진한 임원은 항상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에 새로운 주택 정책, 대입 제도, 조직 개편, 신규 사업 등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2024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생성 AI(Generative AI)를 사용하는 조직은 65%로 1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의외로 성과를 내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허니문 단계는 끝났다’라고 지적하면서, 아직 실질적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회사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AI를 외치고 있다. 회사의 펀더멘털이나 구조적인 현황보다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정보를 과대평가하는 ‘최신 편향(recency bias)’에 빠져 무분별하게 참여하는 모양새다.
리더는 공통적으로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패해도 좋다’는 주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실패에 대한 과감한 용인, 공정한 평가, 책임지는 모습보다 안 좋은 결과를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리더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사실 ‘실패하지 않을 사업만 하라’는 주문이나 다를 바 없다. ‘무능한 성실성’이 조직에 뿌리를 내리는 이유다.
출처 이코노미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