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지난주 월요일 중국의 작은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새로 선보인 AI모델이 돌풍을 일으키며 미국 증시의 AI 테마주가 침몰했다. 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딥시크가 최근 출시한 AI모델 '딥시크-R1′은 성능 테스트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오픈AI의 'o1(오원)′을 능가했다. R1은 미국 수학경시대회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79.8%의 정확도를 기록해 o1(79.2%)을 앞섰고 코딩 테스트에서도 65.9%의 정확도로 o1(63.4%)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R1은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단숨에 ChatGPT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생성형 AI 이후 가파르게 우상향하던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에만 무려 17% 폭락하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이날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6000억 달러(약 867조 원)나 증발했다. 이 수치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됐다. 배트맨(BATMMAAN)이란 신조어를 만들며 승승장구하던 브로드컴도 17% 넘게 떨어졌으며, 마블테크놀로지 -19%, 오라클 -14%, 마이크론테크놀로지 -12%, 대만 TSMC -13%, 네덜란드 ARM -10%를 기록하며 AI 관련 주요 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도 동반 하락했으며, 일본의 반도체 기업도 폭락을 피하지는 못했다. 어드반테스트가 11% 이상 급락했고, 소프트뱅크와 도쿄일렉트론도 5% 넘게 하락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개장한 한국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SK하이닉스가 10% 가까이 하락했고, 삼성전자도 2.4% 넘게 떨어졌다.
중국 스타트업이 미국의 수출 규제 속에 저렴한 비용으로 빅테크에 필적하는 성능을 갖춘 AI 모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긴 것이다. 미국 빅테크기업들이 AI 개발을 위해 지출하는 천문학적 비용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하여 그동안 AI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던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딥시크의 개발비가 단지 80억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동안 최소 수천억 원은 있어야 고성능 AI를 개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던 시장의 고정관념이 깨지게 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딥시크를 "글로벌 테크 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다크호스"라고 평했다. 1957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개발해서 충격을 준 '스푸트니크 쇼크'에 버금가는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오픈AI 같은 선두 그룹들이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AI 개발에 투입하는 상황에서 이 발표는 워낙 충격적이라 딥시크가 개발비를 축소하여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AI 모델과 함께 발표된 논문에 학습 방법도 공개했기 때문에 개발에 들어가는 학습 비용을 속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적은 비용으로 논문의 결과를 재현한 연구 결과들도 속속 등장하였으며 학습 과정을 복제하려는 프로젝트들도 생겨나고 있다.
비용과 성능을 모두 잡은 딥시크로 인한 글로벌 AI 판도는 앞으로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중국이 고가의 미국 칩이 없어도 오픈AI 수준의 AI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고, AI 산업에서 '중국 표준'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상 증명됐기 때문이다. CNN은 "잘 알려지지 않은 AI 스타트업의 놀라운 성과는 미국이 지난 수년 동안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고성능 AI 칩의 중국 공급을 제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딥시크의 성과는 미국의 무역 제재가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딥시크는 생각하는 과정인 '추론'을 문자로 자세하게 풀어서 써주는 것이 특징이다. 생각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사용자가 답변의 정확도를 검증하기 쉽다. 이러한 딥시크의 성공 요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오픈소스 방식으로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를 누구나 보고 수정할 수 있고, 배포도 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미리 짜 놓은 코드를 활용해 개발할 수 있어서 개발 비용과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에 풀리자마자 전 세계 AI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들 사이에서 AI모델의 성능과 추론 능력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딥시크도 이미 공개된 AI 관련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작년 11월에 처음 대화형 AI 모델 R1의 초기 버전인 'R1 라이트'를 공개한 후 불과 한 달만에 'V3'를, 다시 한 달만인 1월 20일 'R1'을 내놨다. 이미 검증된 코드를 가져다 사용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고성능 AI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전문가 혼합' 기법을 적용했다. 이는 AI를 특정 작업에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개발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로, 마치 높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1타 강사들에게 족집게 과외를 받는 것과 같다.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도학습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화학습을 통해 AI를 학습시켰다. 지도학습은 사람이 직접 양질의 데이터를 만들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이지만, 강화학습은 AI모델이 스스로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탐구하고 학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딥시크는 상대적으로 저가의 구형 반도체를 썼지만, 개발 과정에서는 새로운 혁신을 선보였다.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AI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저비용 고성능'의 성공사례가 된 것이다.
딥시크는 1985년생인 량원펑이 2023년 5월에 항저우에 설립했다. 아직 2년도 되지 않은 작은 스타트업으로 현재 직원은 139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개발자다. 량원평은 저장대 석사 출신으로 해외 경험은 없다. 딥시크는 독특하게도 경력이 짧은 중국 토종 젊은 직원만을 채용한다. 해외파는 거의 없으며, 직급, 연공 서열 등을 중시하지 않는다. 경력 3∼5년이면 최고참이고, 8년 이상의 경력자는 아예 면접조차 보지 않는다. '혁신 능력'을 직원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는 량원평은 "혁신은 자신감에서 시작된다. 젊은이들에게서 더 많은 혁신 능력을 볼 수 있다"며 중국 청년들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2024년 초 시드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는 2000억 원 정도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오픈AI는 작년 말 기업가치 208조 원으로 8조 7000억 원을 유치했으며, R&D 인력만 1200명이 넘는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딥시크의 확장성이다. 상세하게 공개된 AI모델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쉽게 개발에 참여하여 더욱 진보한 AI가 탄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딥시크의 성능과 가성비에 대한 시장 반응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저가 구형 칩으로만 AI를 개발했다고 밝혔지만, 딥시크의 모기업이 엔비디아 첨단 칩을 1만 개 정도 보유하고 있어서 초기 모델은 이를 기반으로 개발했을 거란 주장이다. 일론 머스크도 딥시크가 고성능 AI칩을 대량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 AI데이터 기업인 '스케일 AI'의 알렉산더 왕 CEO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약 5만 개의 엔비디아 고성능 칩을 소유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느낀 미국 AI기업들은 딥시크 경계에 나섰다. 메타는 딥시크 기술을 분석하는 워룸(War Room)을 4개나 설치해 대응하고 있다. 오픈AI는 딥시크가 80억 원을 써서 AI모델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이같이 저비용으로 뛰어난 성능을 갖게 된 것은 오픈AI가 큰돈을 써서 확보한 데이터를 도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데이터 도용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또한 딥시크가 사용자의 e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수집해 중국에 있는 서버에 저장시키고 있어서 틱톡과 마찬가지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글로벌 AI 시장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딥시크가 가능성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스타트업도 나서야 한다. 제2의 딥시크는 반드시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 혁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청년들을 응원한다.
* 저자 허락 하에 임윤철 선임기자가 옮겨 씀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5148176?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