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대 자체가 동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속에 태어나고 자란 SNS 시대의 핵심 세대다. 트렌드도 각종 유행어도 이들 세대로부터 나온다. 이들의 소비는 곧 한국 사회의 소비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이들의 소비는 다른 세대와 다르다. 가격과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브랜드 이미지와 경험적 가치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합리적인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컬처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소비는 취향을 반영한 문화적 행위이자 정체성을 표현하는 언어다. 남들이 모르는 브랜드를 발굴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유행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 편의점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2030세대가 선택하는 브랜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한경비즈니스>는 2030세대가 어떤 브랜드를 자신의 취향에 가까운 ‘최애’로 인식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과 17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공통 문항을 통해 브랜드를 대하는 가치관과 선호를 확인하고, 개별 문항에서는 일상의 특별한 상황에서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는지 살펴봤다.
30살 4년 차 직장인 김보민 씨는 출근 전 편의점을 들른다. 2000원대 커피를 고른 뒤 집에서 챙겨온 스탠리 텀블러에 옮겨 담는다. 사무실에 들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텀블러 사진을 찍어 올린다. 해시태그는 #직장인 #스탠리 #출근템. 나의 취향을 공유하고 일상 속 취향을 드러내는 작은 루틴이다. 점심시간엔 동료들과 7900원짜리 샐러드를 먹는다. 건강을 생각하는 ‘저속노화’ 트렌드에 어울리는 식사다.퇴근 후에는 성수동에서 친구를 만난다. 지나가는 길에 패션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발견했다. 10만원이 넘는 제품이 부담스러워 마땅히 구매한 것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SNS 사진을 찍은 것에 만족한다. 진짜 목적지는 올영세일이 열리는 ‘올리브영’. 섀도우와 마스카라를 40% 할인된 가격에 구매했다.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무신사 앱을 켜니 장바구니에 넣어뒀던 티셔츠의 할인쿠폰까지 생겼다. 1만원 이상 할인된다는 문구가 나오자 구매를 눌렀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만족하는 소비를 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는 하루다.
김보민은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2030세대의 브랜드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중요한 표현 도구다. 브랜드에 자신을 투영하고 사회적 이미지나 감정적 만족을 얻는다. 제품의 기능만큼 경험과 그 의미를 중요하게 따지며 SNS에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2030세대에게 브랜드는 단순한 제품 이상를 가지는 정체성 표현 수단이다.
트렌디하면서도 가격 부담 없는 브랜드가 ‘최애’
이번 조사는 2030세대가 어떤 브랜드를 자신의 취향에 가까운 ‘최애’(가장 사랑하는 대상)로 인식하는지, 이들이 선택한 브랜드가 업계의 매출 상위 브랜드와 차이가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동시에 2030세대의 최신 소비 트렌드, 젊은이들을 겨냥한 시장에서 기업의 영향력을 분석해봤다.
응답자는 △20~24세 11.1% △25~29세 26.6% △30~34세 24.9% △35~39세 37.5%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여성은 53%, 남성은 47%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조사를 먼저 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브랜드가 내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이 그렇다(61.2%)고 답했다. 2030세대는 브랜드가 가지는 헤리지티(역사·유산)를 이해하고 있으며 특정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브랜드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품질(44.1%)’이었다. 가격(34.6%)이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이었고 브랜드 이미지(14%)와 트렌드, SNS 화제성(4.4%) 등이 뒤를 이었다. 가격과 품질의 균형은 2030세대가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된 브랜드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 소비자의 특성이 더해진 결과다. 앞서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한영에서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을 때도 한국인들이 글로벌 소비자보다 제품의 품질을 더 중요하게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도 소비재 구매 시 ‘품질’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은 비율은 한국(41%)이 글로벌 평균(35%)를 상회했다.
동시에 적절한 가격과 트렌드 반영도 필요하다. 브랜드에 어떤 매력이 있어야 하냐는 질문에 ‘합리적 가격대를 유지해야 한다’(35.6%)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다’(34.9%)와의 차이는 근소했다. 또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답도 19.1%로 높게 나타났다.
가격은 2030세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최근 1년간 소비 성향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소비를 택한 응답자는 40.8%를 기록했다. 실속형 소비(최소 지출, 14.6%) 응답을 합칠 경우 과반을 넘는다. 심리적 만족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심비 소비는 33.8%였고 가치와 철학을 반영하는 미닝아웃 소비는 6.7%였다. 과한 지출을 뜻하는 ‘플렉스 소비’는 4%에 그쳤다.
반면 브랜드 선택에 ‘글로벌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해 2030세대의 브랜드 선택과 크게 상관이 없었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소비자 선호도와 구매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는 그간의 평가와는 대조되는 결과다. 오히려 사회적 가치(ESG 등) 실천 여부가 글로벌 인지도보다 더 높은 응답(7.8%)을 보였다.
가격과 품질을 따지는 현상은 불황의 산물이라는 평가다. 플렉스, 오마카세, 골프, 욜로(YOLO) 등 과거 젊은이들의 소비를 상징했던 단어들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경기 불황 속에 좁아진 취업문, 절망적인 부동산 가격, 신통치 않은 주식과 코인투자 성과 등이 그들을 실용주의적 소비로 이끌었다는 얘기다.
‘불황’과 ‘취향’이 맞물린 곳에 새롭게 탄생한 트렌드도 있다. 즉석 촬영 부스와 인형뽑기가 대표적이다. 성수동, 더현대 서울, 한남동 등 2030세대가 주로 방문하는 주요 상권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인생네컷과 인형뽑기의 공통점은 저렴한 가격에 자신 또는 취향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형뽑기는 2판에 1000원, 즉석 촬영은 2장 인화 기준 4000원이다.
두 트렌드는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메인 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는 인형뽑기 매장은 ‘뽑파민’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뽑기를 통해 몰입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킨다는 의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와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형 뽑기방 등 ‘청소년게임 제공업장’ 832곳이 신규로 열었다. 2023년 287곳보다 2.9배로 증가했다. 즉석 촬영 부스 역시 인생네컷, 포토이즘, 포토그레이, 돈룩업 등 새로운 테마와 콘셉트의 브랜드가 꾸준히 생기고 있다.
동시에 2030세대의 다양성 추구 욕구가 반영되기도 했다. 같은 자금으로 다양한 선택을 하려는 소비 행태가 가격대를 따지는 요인으로 이어진다. 리셀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도 같은 영향이다. 국내 리셀 시장은 2021년 7000억원 규모에서 올해 3조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인지도 중요치 않아…‘취향’ 보여줄 수 있으면 OK
가격과 품질 다음으로 2030세대가 최애 브랜드를 정하는 기준은 ‘내 취향을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느냐’(28.2%)다. 가격·품질의 균형(32.5%)의 뒤를 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 소비와 연결시키는 2030세대는 제품을 통해 취향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올해 ‘오타쿠코어’가 유행하는 것도 취향 트렌드와 직결된다. 오타쿠코어는 애니메이션·만화·게임 등 특정 문화에 깊게 몰입한 사람을 뜻하는 ‘오타쿠’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특정 문화를 드러내는 패션을 일상복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숨겨야 할 비주류 문화로 통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개인의 취향과 취미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으며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점(20.3%), 주변에 추천할 수 있는 점(16.8%) 등을 최애 브랜드 선정의 핵심 조건이라고 답했다.
과거와 달리 소비를 위한 정보는 SNS가 압도적이었다. 10명 가운데 4명은 SNS 인플루언서 콘텐츠(40.8%)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앱·웹·뉴스레터 등 브랜드 공식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이 22.2%로 많았다. 브랜드 공식 채널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로는 무신사가 대표적이다. 2030세대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대표주자로 트렌디한 화보, 인터뷰, 숏폼 콘텐츠 등을 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무신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0만 명에 달하며 유튜브 구독자도 40만 명이 넘는다. 기업들이 자체 플랫폼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최애 브랜드에 대한 2030세대의 감정은 신뢰감(60.7%)이다. 믿고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들의 최애 브랜드가 될 수 있을지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뒤를 이어 설렘(15.6%), 즐거움(9.9%) 등의 기분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같은 요소들을 만족하지 못하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기대한 가치와 실제 경험 간의 격차가 커질수록 신뢰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점을 확인했다.
응답자 가운데 48%는 과도한 가격 대비 낮은 만족감을 느낄 때 브랜드에 가장 큰 실망 경험을 하게 된다고 답했다. 또 제품의 실제 품질이 광고 이미지와 차이가 있을 경우(34.1%)도 2030세대가 실망하는 부분이다. 브랜드는 단순한 마케팅보다 가격 대비 만족도와 진정성을 담아야 2030세대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진정성은 2030을 향한 또 다른 키워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에 ‘지루함’을 느낀다”며 “개성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 나만 알고 싶은 현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살아온 환경이 취향에 영향을 미쳤다. 2030세대가 태어난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아진 시점이기도 하다. 1960년대 200달러를 밑돌던 1인당 GDP는 1980년대 들어 2500달러를 넘어섰고 1990년대에는 1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수치가 2만 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이들은 어린 시절을 선진국에서 보냈다는 게 다른 세대와의 차이점이다.
이은희 교수는 “풍족한 가운데 태어난 2030세대는 안목이 높다”며 “이들은 ‘어떤 포인트가 특별한지’를 중요하게 따진다. 다 아는 브랜드는 뻔하다고 싫어한다. 모든 연령대에서 아는 브랜드는 더 이상 2030세대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희소 브랜드를 찾아내는 게 이들의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2030세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품 소비를 넘어 정서적 연결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20년 경력의 브랜드 컨설턴트인 한주영 숭실대 겸임교수는 2030세대에게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구분하는 이름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2030세대는 제품 자체보다 그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경험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브랜드 공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같은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돼 감성과 취향을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
한주영 교수는 “브랜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며 “‘왜 이 브랜드를 써야 하는지’ 이유를 중요하게 여기고 브랜드의 철학, 스토리 등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2030세대를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은희 교수는 “브랜드는 2030세대에게 어떤 서사를 부여할지 생각하고 어떤 상징성을 부여할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한경비지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