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신경세포는 학습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세포와 연결된다. 컴퓨터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고등 인지 기능을 수행한다.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AI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파이널스파크


2022년 호주 연구진이 신경세포로 ‘퐁(PONG)’ 게임을 했다고 발표했다. 퐁은 화면 왼쪽에 있는 막대를 아래위로 움직여 공을 받아 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인간과 쥐의 뇌세포 80만 개를 전극 위에서 배양하면서 공의 위치 정보를 전기신호로 주고 그에 맞게 세포가 반응한 신호로 막대를 움직이도록 했다.

신경세포가 막대를 움직여 공을 맞히면 규칙적인 신호를 보내 보상하고, 놓치면 불규칙한 신호를 보내 벌을 줬다. 바로 구글 딥마인드가 이세돌 9단을 이긴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개발할 때 사용한 강화 학습법이다. 뇌세포는 강화 학습을 반복하면서 5분 만에 공을 제대로 받아 치며 랠리를 할 정도로 퐁 게임에 적응했다.

AI의 한계를 신경세포를 이용한 바이오 지능으로 극복하려는 연구가 태동하고 있다.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AI 포 굿 서밋(AI for Good Summit)’ 행사에서 데이비드 그라시아스(David Gracias) 미국 존스홉킨스대 화학생물분자공학 교수는 퐁 게임을 진행한 뇌세포처럼 AI 역할을 하는 생체 컴퓨터 시스템인 ‘오가노이드 지능(Organ-oid Intellogence)’을 발표했다. 2017년 유엔(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처음 시작한 이 행사는 전문가들이 모여 AI가 공익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다.

오가노이드는 장기(organ)에 ‘유사하다’는 뜻의 접미사(oid)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라고 부른다. 그라시아스 교수는 뇌 오가노이드를 뇌 연구나 신약 개발 도구를 넘어 AI 시스템으로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오가노이드 칩 .가운데 투명한 실린더에 뇌 오가노이드가 있고, 주변에는 전극과 회로가 연결돼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살아있는 신경조직과 하드웨어를 결합한 바이오 칩을 개발했다. /사진 미 존스홉킨스대
2 스위스 파이널스파크가 개발한 오가노이드 컴퓨팅 시스템. 신경세포 1만 개로 구성된 지름 0.5㎜의 뇌 오가노이드 4개에 전극 8개가 연결됐다. /사진 파이널스파크

토머스 하텅(Thomas Hartung)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2023년 뇌세포로 키운 뇌 오가노이드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를 결합한 바이오 컴퓨터 시스템인 오가노이드 지능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BCI는 뇌파를 전기신호로 바꿔 컴퓨터와 정보를 주고받게 하는 기술이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미니 뇌인 오가노이드에서 나오는 신호로 AI 같은 연산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원래 뇌를 모방했다. AI는 미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입력하지 않아도 대규모 정보를 학습하고 스스로 방법을 터득한다. 이른바 딥러닝이라는 기계 학습법 덕분이다. 딥러닝은 AI가 대규모 정보를 학습해 스스로 패턴을 파악하는 기계 학습법으로, 인간 뇌에서 이뤄지는 시각 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했다. 신경세포는 각자 특정 정보만 처리하지만 서로 복잡하게 얽혀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영상을 파악한다.

문제는 뇌를 모방한 AI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AI에 대규모 정보를 학습시키고 가동하려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픈AI의 GPT-3과 같은 생성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1300 (메가와트시)의 전력이 소모된다. 이는 미국 가정 130가구가 쓰는 연간 전력량과 맞먹는다. AI의 에너지 수요는 5년 내 두 배로 늘어나 전 세계 전기 소비량의 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오가노이드와 결합한 바이오 칩은 전력 소비를 100만~100억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의 시냅스(신경세포 연결)로 이뤄진 인간 뇌는 20W 정도 에너지만 쓴다. 백열전구의 5분의 1 수준이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뇌파검사(EEG) 장치를 개발했다. 지름이 3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인 뇌 오가노이드에 전극이 25개 연결됐다. 기존 장치보다 1000만에서 1억 배까지 높은 밀도다.

연구진은 뇌 오가노이드를 AI처럼 강화 학습으로 훈련했다. 특정 영역에 전기 자극을 주고 원하는 전기신호가 나오면 뇌의 보상 중추가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는 도파민 호르몬을 투여했다.

강화 학습을 거친 뇌 오가노이드는 미니 로봇 자동차를 조종했다. 나중에 자율주행 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오가노이드는 실험 동물 대신 약물 효과를 알아보는 데 많이 쓰인다. 연구진은 AI 시스템이 실험할 수 없는 뇌 인지 장애의 원리를 오가노이드 지능으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에서도 오가노이드 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호주의 코티컬 랩(cortical lab)은 퐁 게임을 한 뇌세포 시스템을 개발했다. 2025년부터 뇌세포를 6개월까지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다.

스위스의 파이널스파크(FinalSpark)는 월 1000달러(약 139만원)에 원격으로 실험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지능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는 2024년 신경세포 1만 개로 구성된 지름 0.5㎜ 크기의 뇌 오가노이드 4개에 전극 8개가 연결된 시스템을 공개했다. 전극으로 오가노이드에 전기신호를 보내고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신호를 측정하면서 원하는 작업을 하도록 훈련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 지능 시스템은 아직 개념 증명 단계로, 실제 일을 하기엔 이르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된 오가노이드의 생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산소와 영양분을 줘도 오가노이드 중심부까지는 스며들지 못한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산소와 영양분, 성장인자를 능동적으로 주입하고 노폐물도 제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오가노이드가 아직 미성숙 단계라는 한계도 있다. 뇌세포가 태아 같은 초기 단계라는 말이다. 뇌세포가 어른처럼 완전히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아 고등 인지 기능을 수행할 수는 없다. 또 오가노이드의 작동 방식도 제각각이다. 아직 표준화도 안 된 셈이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은 “기존 컴퓨터에 양자 컴퓨터를 연결해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만들 듯, 오가노이드가 AI에 효율을 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며 “아직은 뇌 오가노이드에 신호 입출력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워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조선일보] https://economy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9/12/2025091200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