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7시 홍대입구역 인근 'T' PC방.
약 230석 중 3분의 1 넘게 들어찬 내부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더 많아 보였다. 각자 게임에 몰두한 탓에 쉽사리 말을 걸기 어려운 가운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협동 작전을 펼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대기열을 기다리는 듯 게임 '발로란트'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던 한 외국인 손님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그는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허락하더니 다시 헤드폰을 끼고 영상에 몰입했다.
K-컬쳐의 인기를 타고 한국 방문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PC방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PC방 이용 36% 증가…"난생 첫방문"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와 올해 1~7월 미국·일본 등 4개국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외국인 관광객의 1~7월 PC방 이용 건수는 작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특히 홍대입구역 인근 'T' PC방은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 '페이커'(이상혁)가 소속된 프로게임단에서 만든 까닭에 국내외 e스포츠 팬들의 성지로 통한다. 게임단의 여러 상징과 함께 기념품 가게, 경기를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까지 마련돼 있다.
앞서 지난 18일 해당 PC방을 찾았을 때도 외국인 손님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당일 만난 벨기에 출신 관광객 유세프(21) 씨는 "벨기에는 PC방이 없어 고향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해보러 오늘 처음 PC방에 방문했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좋아하는 e스포츠팀의 물건도 구경한 데다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곳 키오스크에서 PC 이용시간을 구매하던 프랑스 출신 루카스(23) 씨도 "난생 첫 PC방 방문"이라고 말했다.
루카스 씨는 "한국의 게이머들과 승부를 겨루러 왔다"며 "컴퓨터 성능이 좋아 보이는 데다 수많은 사람이 여기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어 기대된다"고 밝혔다.
T PC방 직원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3대 1 정도는 될 듯하다"며 "과거에도 PC방에서 일해봤지만, 이곳은 특히 e스포츠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관광지에 온 김에 PC방도 이용하려고 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종각역 인근 'R' PC방 직원들 역시 "외국인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서비스 중인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하는 e스포츠 경기장과 같은 층에 위치해 있다.
R PC방 직원은 "유흥가나 학교 근처에 있는 PC방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가 없는 날이면 소강상태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여행 성수기 시즌이면 항상 많이 찾아온다"며 "봄·가을이 성수기인 만큼 최근 들어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종각 젊음의 거리에 위치한 'O' PC방 직원은 "1호점과 2호점 모두 근무하다 보면 외국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게임도 하지만, 티켓팅 등을 하러 찾는 외국인이 많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국 PC방서 맛볼 수 있는 떡볶이·돈가스·김치볶음밥"
소셜미디어(SNS)에서도 PC방을 찾는 외국인의 후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
34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모어 베스트 에버 푸드 리뷰 쇼'(More Best Ever Food Review Show·@MoreBestEverFoodReviewShow)는 한국 PC방의 음식에 주목, 저렴한 PC방부터 프리미엄 PC방까지 직접 방문해 음식이나 서비스의 수준을 비교하는 영상 '10달러 vs 120달러 코리안 PC방 푸드'($10 vs $120 Korean PC Bang Food!!)를 게시했다.
지난 6일 게시돼 약 18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떡볶이·돈가스·김치볶음밥부터 와플·허니버터감자까지 PC방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평가가 담겼다.
이에 유튜브 이용자 'food***'는 "정말 멋진 영상이고 한국에 가면 꼭 PC방에 가야겠다"(This was so cool to watch! Awesome video! Will definitely have to go to a PC Bang when I go to Korea!)는 댓글을 달았다.
또 'stu***'는 "이게 내가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this here is a reason why i want to go to Korea.)라고 썼다.
틱톡에서도 'PC방'(PC bang)을 검색하면 각국 관광객이 게시한 한국 PC방 방문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틱톡 이용자 'uyumiya'는 지난해 8월 한국의 PC방을 방문한 경험을 영상으로 게시했다.
그는 "한국 PC방은 정말 편안하고, 맛있는 음식을 판매한다"(PC방 in Korea are so comfy and sell such a great food)며 "두 시간 동안 게임을 하고 스팸볶음밥을 먹었다"(literally spent two hours playing girls go games and eating spam fried rice)고 밝혔다.
이에 "지난번 PC방에 갔을 때 결국 다섯 시간을 보냈다"(Last time I went I ended up being there 5 hrs)·"PC방에서 3D 렌더링 포트폴리오를 작업했는데 훌륭했다"(I work on my 3d cgi portfolio stuff at the pc bangs they are great) 등 PC방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댓글이 달렸다.
키오스크 이용 어려워 발길 돌리기도
이렇듯 외국인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PC방 이용이 쉽지는 않다.
통상 PC방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요금을 선결제하거나 회원가입을 하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기계가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지원하지 않는 등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법을 외국어로 적어 배치해두는 곳도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R PC방의 키오스크 앞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돌아서기도 했다.
기자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번역기를 통해 "한국어를 할 줄 몰라 키오스크 설정을 영어로 바꾸고 싶은데 해당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T PC방 직원은 "한국인과 달리 외국인 관광객은 선불이나 회원가입 등 한국 PC방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며 "리플렛을 두고 있긴 하지만 키오스크 자체가 한국어이다 보니 직접 직원에 문의하는 외국인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