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환경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성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산됐지만, 다회용기 순환센터는 새로운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향후 논의의 방향을 비춘다.

2025년 8월 5일부터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본부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추가협상회의(INC‑5.2)는 마침내 합의 도출에 실패하며 막을 내렸다. 협상은 8월 14일 종료 예정이었지만, 주요 쟁점을 좁히지 못한 채 8월 15일 오전 최종 중단됐다.

이번 협상에서 최대 이견은 플라스틱 생산에 대한 감축 여부, 유해 화학물질 관리, 재원 조달 및 이행 체계 설립, 그리고 조약의 강제성 수준이었다. 특히 주요 석유화학 산업 국가들은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발하며, 일부 국가들은 ‘합의 불가능 지연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교량적 역할’을 자처하며, 부산에서 열린 INC‑5.1 이후 유연한 절충안을 제시하고 다자 간 소규모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보였다. 정기용 기후변화대사는 대표단 수석 대표로서 이견 국가와 양자 협의를 진행하고, 국내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병행했다.

이처럼 협상 자체는 결렬됐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일정한 진전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제품 설계, 생산자책임제(EPR), 단계적 폐지 방안 등에 대해 100개국 이상이 공감하는 요소가 축적된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정부가 조화를 이루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됐다.플라스틱 조약을 위한 비즈니스 연합

그런가 하면, 협상장 밖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다회용기 순환센터 현장이 주목받았다.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방문한 ProP사(스위스 제네바 소재)는 다회용 컵·식기를 제공하고 회수해 세척한 뒤 다시 공급하는 순환형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한 시간에 약 4,000개의 컵을 세척하며, 여름 성수기에는 직원 수가 겨우 5명에서 최대 4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ProP의 레일라 아슬룬 드 브리스 대표는 최근 프랑스의 일회용품 규제로 인해 다회용 와인잔의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말한다. 이는 정책과 민간 솔루션이 함께 작동할 때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증거다.

협상장에서의 정치적 교착과 현장의 기술·운영적 진전은 상반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간극은 향후 협업의 방향이 단지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실행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부간 협상이 반복적으로 결렬된 이유는 구조적인 이해관계 차이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통제는 자국 산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의장의 문서(Chair’s Text)조차 수백 건의 미합의 괄호로 남아 있어 구속력 있는 조약 성안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합의 불가의 상황이 지속되면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의 중요성에 공감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구조와 이행 기제는 취약하다.

합리적 대안 제시로,

1. 중소 규모의 실천 현장 지원
ProP와 같은 지역 기반 순환경제 모델을 각국 유사 시스템으로 확산시켜 실효성을 검증하는 파일럿을 확산해야 한다.

2. 협상 방식의 다양화
전통적 만장일치(consensus) 방식을 재검토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제한적 다수결(voting) 수단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3. 산업계와 시민사회 통합 플랫폼 구축
기업, 정부, NGO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마련해 생산·순환·디자인 전 과정에 걸친 통합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4. 기술·정책 연계를 통한 실행력 강화
자금 지원과 법적 장치를 포함한 실행 프레임워크를 마련해, 기술적 솔루션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결렬은 좌절이 아니라, 적절한 협의 구조와 실용적 대안을 다시 성찰할 기회이기도 하다. 협상장 밖 순환센터의 실천 사례는 협력이 가능하다는 증거다. 이제는 정치적 협의의 틀을 넘어서, 실행 가능한 변화를 도입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