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폐사한 꿀벌들 [비프로페서 사이트 캡쳐]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농작물 중 70%가 사라진다. 당연히 이를 먹이로 삼는 동물들도 사라지고, 인류도 식량 부족에 직면한다.
왜? 바로 ‘이 곤충’이 없어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00대 농작물의 70%가 꿀벌의 화분 매개 작용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 역으로, 꿀벌이 없다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멸종된다. 꿀벌이 가져오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어느새 꿀벌의 집단 폐사는 더는 낯선 사건이 아닐 지경에 이르렀다. 뚜렷한 원인 규명도 어렵지만, 이젠 한둘이 아닌 복합적 요인이 꿀벌의 집단 폐사를 야기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급변하는 기후변화 자체가 꿀벌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위기가 결국 꿀벌, 동식물, 나아가 결국 다시 인류를 위협하게 되는, 처참한 악순환이다.
WWF(세계자연기금)의 ‘기상 변동성과 침입 포식자의 확산을 통해 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따른 기후변화와 기상 변동성은 꿀벌 군집 내부의 안전성을 위협한다.
꿀벌은 벌통 내 온도 및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폭염, 폭우가 반복되는 급변하는 날씨 속에선 온도 조절 능력이 한계에 직면하고 이는 곧 집단 폐사,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이어질 수 있다.
WWF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공동 연구팀은 RFID 칩을 이용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벌통 안팎의 기상 조건과 꿀벌의 비행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상 요소와 활동성 간 상관관계를 정량적으로 도출할 수 있었다. 꿀벌은 기온 20~30도, 풍속 0~4 m/s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 강수량이 감소할 때 꿀벌의 비행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벌이 다양한 기상 조건에 적응할 수 있지만, 강우와 같은 극단적인 날씨는 벌의 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벌통 외부의 미세먼지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수록 비행 빈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것도 주목된다. 대기질이 나쁘면 벌이 비행을 기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엔 벌통 내외부 습도 차이가 더 두드러졌으며, 이 때문에 벌이 벌통 내부 환경을 조절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꿀벌을 죽이는 ‘등검은말벌’ 등 외래 침입종의 확산이 꿀벌 생존에 또다른 압박이 되고 있다는 점도 규명했다.
연구팀은 서울을 포함한 9개 지역에서 등검은말벌 포획 조사와 함께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 Global Biodiversity Information Facility) 및 네이처링(Naturing)의 시민 과학 데이터를 활용해 등검은말벌의 확산 경향과 지역별 출현 양상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등검은말벌은 기존 남부 지역을 넘어 점차 서울과 강원도, 수도권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 중이다. 비무장지대 인근의 민간인통제선 내 마을에서도 정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꿀벌의 번식과 수분 활동이 활발한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시기와 겹쳐 피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더 심각한 건 기후변화가 등검은말벌의 확산세를 부추긴다는 데에 있다. 주된 요인으론 기온 상승이다. 이 때문에 활동 기간이 길어지고, 먹이 탐색 및 군집 형성 기간도 연장된다. 이른 시기에 번식, 더 빨리 새로운 군집을 형성하고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겨울철 기온이 온화해지면서 월동 생존율도 증가한다. 봄철에 출현하는 여왕벌 수가 증가하면서 군집 형성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등검은말벌 확산은 꿀벌 개체군 손실, 수분 부족, 방제 비용 상승 등을 야기할 수 있다.
기온상승, 강수패턴 변화, 이례적 기상이변이 꿀벌 개체군 생존을 위협하고, 외래 침입종인 등검은말벌도 기후변화에 따라 급속히 확산되면서 꿀벌 생태계에 부담이 가중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어 “극한의 기상 조건에도 안정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벌통 디자인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온 상승에 적용 가능한 꿀벌 품종을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등검은말벌 조기 경보 및 방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을 꿀벌 중심으로 연계하는 활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꿀벌 감소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이다. 기후변화 외에도 살충제 남용, 꿀벌응애(진드기) 확산 등도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