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세계를 놀라게 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혁명이 시작된 지 2년여가 지나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AI 패권전쟁이 점입가경이다. AI는 이제 국가와 기업의 미래 명운을 좌우할 핵심 전략기술로 부상했다. 시장 지배력과 물적·인적 자원에서 절대적 열세인 한국으로서는 무모한 전면전보다 우리의 강·약점, 기회·위협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을 둔 현명하고 실속 있는 국가 AI 전략이 시급하다. 일본 대함대를 대양이 아니라 좁은 울돌목에 끌어들여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과 같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AI 전략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우리의 강점 분야에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협력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정부 부처나 산학연 각계 전문가 그룹은 자기 분야를 앞세우는 이기주의와 모두 하겠다는 무모한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 AI 전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미국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중국 딥시크의 량원펑 최고경영자(CEO)의 선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AI 역량을 가진 중국도 자국 특유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AI 전략은 외부 환경 및 내부 역량의 정밀 분석을 바탕으로 분야별로 ‘빠른 추격자’와 ‘선도자’ 전략을 구분해 적용해야 한다. 먼저 크게 보면 AI 원천기술은 빠른 추격자 전략, AX로 불리는 AI 대전환은 선도자 전략이 필요하다. AI 원천기술에서는 투자, 인프라, 인력 면에서 우리가 추종하기 어려운 압도적 ‘쩐(錢)의 전쟁’을 벌이는 미국, 중국과의 전면 경쟁보다 최근 딥시크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세계 3위 국가를 목표로 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 대신 우리가 강점을 지닌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정보통신기술(ICT) 등 제조업을 위시한 산업 AI 대전환에서는 세계 최강국을 목표로 해야 한다.
산업 AX 전략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올해 CES에서 AI 발전 단계로 제시한 에이전트(Agentic) AI와 물리적(Physical) AI로 나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에이전트 AI란 설정된 목표를 위해 자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상품기획 에이전트, 구매 에이전트 등 기능별 AI 에이전트가 예다.
에이전트 AI 전략에서는 오픈AI,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초거대 AI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의 강점을 살려 산업별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산업 특화 AI 에이전트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 이 전략은 AI 원천기술보다 산업별 데이터와 노하우가 더 중요한 성공 요소여서 승산이 있다.
다음으로 물리적 AI란 실제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말한다.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자동화 시스템 등이 예다. 물리적 AI는 이동성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에이전트 AI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전력 소모에 매우 민감하기에 우리가 초저전력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 기존 제조업 강점과 결합해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전략으로 ICT 선도국이 됐다. 이제 ‘AI는 늦었지만 AX는 앞서가자’, ‘일반 에이전트 AI는 늦었지만 산업 특화 에이전트 AI, 물리적 AI는 앞서가자’, ‘GPU(그래픽처리장치)는 늦었지만 초저전력 AI 반도체는 앞서가자’는 전략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AI 3대 강국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