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심리학과 존 바그 교수는 온도가 사람의 판단과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채용 인터뷰를 하면서 면접관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차가운 콜라를, 다른 그룹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게 했다. 그 결과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콜라를 마신 면접관은 구직자 모두를 ‘차가운 사람’으로 평가했고, 커피를 마신 면접관은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차가운 온도는 냉철함을, 따뜻한 온도는 관대함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단지 온도 변화만으로도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바꾸고,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자극이 자신도 모르게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점화효과(priming effect)’라고 한다.
미국 오리건대 심리학과 폴 슬로빅 교수는 감정이 판단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호감을 느낄 때는 긍정적인 효과에 집중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반감을 느낄 때는 리스크를 부각해 부정적인 결과를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관적인 호불호가 무의식적으로 점화효과를 일으켜 대상에 대한 신뢰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그럴듯한 논리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믿으려 하고,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불신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슬로빅 교수는 이를 ‘감정 편향(affect heuristic)’이라 명명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점화효과와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할 뿐 아니라,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법칙은 터득 당시 조건과 완벽하게 똑같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과거 경험에 대한 맹신이 기업을 실패로 이끄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행동경제학자들은 ‘패턴인식(pattern recognition)’과 ‘감정 태깅(emo-tional tagging)’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패턴인식은 뇌가 정보를 받아 통합하는 과정을 말한다. 과거의 경험과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기에 앞서 일단 과거 경험에 비추어 비슷한 패턴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판단과 결정을 한다. 상당히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경험의 덫(ex-perience trap)’에 빠지는 편향을 주의해야 한다.
감정 태깅은 기억에 저장된 경험이나 생각에 감정적인 정보를 갖다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험은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경험에 사실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감정의 꼬리표(emotional tag)’가 붙어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경험의 덫이 된다.
과거 성공 경험을 고수하다 무너진 회사는무수히 많다. 코닥과 노키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형 항공사가 저비용항공사(LCC)에 밀리고, 레거시 미디어가 소셜미디어(SNS)나 플랫폼 등 다양한 디지털 매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넷플릭스나 테슬라의 성공은 과거 패턴을 과감하게 깨트린 사례로 회자한다.
무의식에 내재된 감정은 이성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감정이 판단에 너무 강하게 개입하면 합리성을 억압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덮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감정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긍정과 부정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면 일단 판단을 미루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