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 박사

생후 1~2년이 지나면 피부가 주름지고 키가 자라지 않으며, 뼈와 혈관이 급속도로 노화되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조로증(허친슨-길포드 조로증 증후군, HGPS)이라는 유전질환을 앓는 아이들이다. 약 800만명 중 1명에게 발생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평균 기대수명은 약 14.5년에 불과하며, 아직까지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승인한 유일한 치료제인 ‘로나파닙’은 1회 투여 비용만 약 14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약물이다. 하지만, 수명을 약 2.5년 연장시키는 데 그칠 뿐이며, 다른 치료제와 병용이 필요하고, 부작용의 위험도 있어 근본적인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 김선욱 박사 연구팀은 차세대 유전자 조절 기술을 활용해 조로증의 원인을 정밀하게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RNA)를 정확히 잘라내고 정상 기능은 그대로 유지해 안전성까지 높이며, 조로증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

조로증은 LMNA 유전자에 생긴 단 하나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이 돌연변이는 세포 안에서 ‘프로제린(progerin)’이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 단백질이 세포의 핵 구조를 망가뜨리고, 세포를 빠르게 노화시켜, 노인처럼 뼈가 약해지고 혈관이 굳어져 결국 주요 장기의 기능이 멈추게 된다.

연구팀은 이 프로제린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와 구별해 정확히 골라내는 RNA 가위(RfxCas13d, 프로제린 gRNA)를 만들었다. 이 RNA 가위는 정상적인 단백질은 건드리지 않고 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만 정밀하게 제거할 수 있다.

특히 이 기술은 DNA를 건드리지 않고 RNA만을 조절하므로 기존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Cas9)에 비해 훨씬 안전한다. 또한 실수로 다른 유전자까지 자를 위험이 거의 없으며, 자르더라도 나중에 되돌릴 수도 있는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RNA 타겟 유전자치료제의 작용기전 및 기대효과 모식도

이 RNA 치료법을 조로증 유전자가 있는 마우스 모델에 적용한 결과 털 빠짐, 피부 위축, 척추 기형, 운동 능력 저하 등 조로증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또한, 체중이 증가하고 생식기관 기능도 회복됐으며, 더 나아가 심장과 근육의 기능까지 회복되어 건강한 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 연구로 단순한 질병 치료기술을 넘어, 노화의 근본 원인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나이가 든 사람의 피부세포에서 프로제린이 서서히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 RNA 가위 기술을 적용했을 때 자연적인 노화 현상도 일부 억제된다는 실험결과를 얻었다.

김선욱 박사는 “이번 기술은 조로증뿐 아니라, RNA 편집오류로 발생하는 다른 유전질환의 15% 이상에 적용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노화 관련 질병이나 암, 신경퇴행성 질환 등에도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Molecular Therapy’에 6월 14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