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컬럼비아대 MBA 교수인 조너선 레바브는 이스라엘의 경험 많은 판사들이 10개월간 처리한 1000여건의 보석신청을 분석하여 '법원의 보석 허가 판결이 식사시간과 높은 상관성을 보인다'는 다소 믿기 어려운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오전 업무 시작 직후와 점심 식사 후의 보석 허가 판결은 65%로 높고, 점심시간 직전과 업무 종료 직전 허기를 느끼는 시간에는 보석 허가 판결이 0%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범죄유형과 성별, 수감기간 등을 고려해 조정해도 결과는 같았다.

예일대 심리학과 존 바그 교수는 온도가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10명의 면접관이 채용 인터뷰를 하는데, 면접관 5명에게는 차가운 콜라를, 나머지 5명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게 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같은 구직자에 대해 콜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을 거부했고, 커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을 결정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차가운 온도는 냉철함을, 따뜻한 온도는 관대함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온도의 변화만으로도 인간은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선택한다. '점화효과(Priming effect)' 때문이다. 점화효과란 앞서 제시된 자극이나 경험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판단에 영향을 주는 심리 현상이다. 이러한 내용은 바그 교수의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Before You Know It)'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상세히 소개돼 있다.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그의 논문 '감정적 개와 이성적 꼬리(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 이성이 아니라 일단 직관에 의해 먼저 옳고 그름을 결정한 후 논리적으로 그 이유를 만든다고 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매 순간의 판단과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도 무의식이 개입한 결과일 수 있다. 전문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슬기로운 직장생활의 기본수칙이 무엇인가. 바로 '눈치'다. 상사의 기분이 좋은 타이밍을 놓치면, 별거 아닌 일로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리 없이 통과될 보고서도 다시 써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매일 아침 상사의 표정부터 살피는 건 직장인들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직장인이 가장 서러운 순간은 '상사가 기분에 따라 트집을 잡을 때'이고, 직장 선배들이 가장 뽑고 싶은 부하는 '눈치 빠른 후배'라는 설문결과도 있다.

호불호의 주관적 감정은 신뢰도를 결정하고 그럴듯한 논리까지 만든다. '감정 휴리스틱(Affect Heuristic)'이다. 좋아하는 직원의 말은 믿고 싶고 호감을 갖게 된다. 반면 싫어하는 직원의 보고서는 왠지 불신의 감정이 앞선다. 감정 휴리스틱의 개념을 정립한 오리건대 심리학과 폴 슬로빅 교수는 사람의 감정이 판단과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는 긍정적인 효과에만 집중하며 위험성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싫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는 반대로 리스크를 부각하며 부정적인 결과만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은 감정에 반응하는 존재이고 감정을 완벽하게 배제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감정이 판단에 개입하면 합리적 추론의 필요성은 무시되기 쉽고, 크게 증폭된 감정이 문제의 본질을 덮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결정을 앞두고 감정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특정 이슈를 두고 의견이 무조건적 긍정과 부정의 평가로 나뉘거나, 구성원들의 제안에 호불호 감정이 느껴진다면 일단 리더는 판단을 미루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무의식적 감정이 이성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리더가 좋아해도 틀릴 수 있고 싫어해도 맞을 수 있다. 조직에서 리더의 감정이나 선호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