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가 7일 시작한다.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회의, 즉 교황 선거를 의미한다. 라틴어로 '문을 잠근다(closed with a key)'를 뜻하며,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외부와 단절된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사망하거나 사임할 때,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열린다. 단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 갖는다. 전체 투표자의 2/3 이상 표를 얻는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대되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 투표는 계속되며,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추기경이 유권자인 동시에 후보자가 된다.
초창기 교황은 지역 성직자와 신자들의 선거로 뽑혔다. 그러나 교황의 영향력이 커지자 교황 선출에 황제나 왕, 귀족들의 간섭이 커졌다. 이에 1059년 니콜라오 2세 교황은 선거권을 추기경들에게 국한시켰고, 1179년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2/3 이상 득표해야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1268년 비테르보에서 열린 교황 선거는 무려 3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긴 선거에 지친 비테르보 시민들은 성당 문을 밖에서 잠그고 빵과 물만 제공하며 빠른 결정을 촉구했고, 결국 2년 9개월 2일 만에 교황이 선출됐다. 이렇게 콘클라베가 시작됐다. 첫 콘클라베로 선출된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이 1274년 콘클라베를 제도화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콘클라베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에서 진행된다. 콘클라베가 바티칸 시스티나에서 처음 열린 것은 알렉산데르 6세를 선출했던 1492년부터지만, 1878년 레오 13세 선출부터 지금까지 시스티나에서만 교황 선출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시스티나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등 예술적인 가치와 함께 콘클라베의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추기경 선거인단은 콘클라베 첫날부터 투표를 시작한다. 첫째 날에 결정이 나지 않으면 둘째 날은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 투표를 한다. 만약 둘째 날까지 결정이 되지 않으면, 셋째 날은 투표는 하지 않고 기도와 묵상만 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결론이 날 때까지 매일 하루에 4번씩 투표를 하게 된다.
콘클라베는 엄격히 격리된 상황에서 실시된다. 추기경들은 바티칸 외부로 나갈 수 없으며, 라디오나 TV, 신문도 볼 수 없다. 외부인과의 전화 통화도 불가능하다. 추기경의 숙소에는 청소 직원, 의사, 고해성사를 듣는 사제 외에는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으며, 이들 또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콘클라베 기간에는 매일 사용한 투표용지를 태우는데, 외부인들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색깔로 교황 선출 여부를 알 수 있다. 흰 연기가 나오면 교황이 선출됐다는 것이고, 검은 연기는 실패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교황 선출권이 있는 추기경 수는 120명 이하로 제한돼 임명됐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중 80세 미만 추기경을 더 많이 임명했다. 그래서 이번 콘클라베에는 역대 최고로 많은 135명(전체 추기경은 225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115명이 최대였다. 콘클라베 기간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길어도 5일은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평균은 사흘이었고, 20세기 이후 가장 길었던 콘클라베는 1922년 14번의 투표를 거친 비오 11세 교황 선출 때인 5일이었다. 가장 짧았던 때는 단 3차례 투표로 이틀 만에 결론이 났다.
현실의 콘클라베와 함께 영화 '콘클라베'(에드워드 버거 감독)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색상 등을 수상했고, 정치 칼럼니스트 출신 작가가 2013년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지난 3월에 개봉했다가 교황 선종 이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며 역주행 중이다. 영화는 고증을 통해 콘클라베 과정을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콘클라베에서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 악마의 대변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신중함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1587년 교황 식스토 5세에 의해 제도화된 데블스 에드버킷은 교황 후보자들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분석해서, 과거 행적과 품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근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후보자의 신학적, 도덕적, 행정적 능력을 철저히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악의를 가진 비판보다는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후보자가 성인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철저히 검토하고, 반론을 제기하며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만 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 내적 시선으로 평가하기 어렵거나 철저하고 혹독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무신론자나 더 나아가서 반종교론자에게도 이 직무를 맡기기도 했다.
데블스 에드버킷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을 앞두고 손꼽히는 지식인이자 무신론계의 거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교황청이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을 요청한 것이다. 히친스는 그의 저서 '자비를 팔다(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에서 이미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해 통찰력 깊은 분석과 비판을 가한 일이 있어 데블스 에드버킷으로 선정되었다. 히친스는 후보자에 대한 증언은 성경이 책상 위에 놓인 조용한 방에서 성직자들만 배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며, 기탄없이 할 말을 다 하도록 하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또한 이러한 검증 시스템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성인으로 인정)이나 시복(복자로 인정) 절차를 개혁하면서 공식적인 데블스 에드버킷 역할은 사라졌다. 하지만 콘클라베에서는 여전히 토론과 검토 과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데블스 에드버킷 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천주교는 교구와 교황청의 다단계 심사, 전문가 검토, 그리고 추기경단의 심의를 통해 더욱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성인 인정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오히려 이러한 제도는 최근 비즈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서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특히 경영자나 권력을 가진 특정인이 독단적으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의견이 첨부되어야만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활용된다면,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지, 도덕적 결함이나 숨겨진 문제가 있는지 등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고, 감정이 아닌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 misbehaving)'에서 제시한 '사전부검(The Premortem)'제도를 도입한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전부검은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 추진하려는 사업이나 제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제도다. 실제 문제가 발생한 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사후부검(postmortem)'과는 달리 실패를 사전에 예방할 가능성이 커지며,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되어 리스크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결국, 데블스 에드버킷은 단순히 '반대하는 역할'이 아니라,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미래의 리스크를 줄이며, 후광 효과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