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본과의 차세대 광(光)통신용 반도체 협업을 처음 언급했다.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인 광통신 프로젝트에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기술 협력을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또 한일 경제 협력을 두고 유럽연합(EU)과 같은 통합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日서 새 반도체 협업” 첫 언급

최 회장은 22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 NTT와 반도체 기술 개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아이온(IOWN·Innovative Optical & Wireless Network) 프로젝트’에서 새 반도체 기술 개발을 추진 중임을 공개했다. 최 회장은 오사카·간사이 세계박람회(엑스포) 참관 차 지난 15일 일본을 방문해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부 외신들이 지난해 초 SK하이닉스, NTT, 인텔 등이 공조하는 한미일 반도체 협력을 보도한 적은 있지만, 최 회장이 이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아이온은 NTT, SK텔레콤(017670), 소니, 인텔 등이 참여하는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다국적 프로젝트다. 통신 데이터를 기존 전기가 아닌 빛 형태로 전달해 지연 없이 빠르면서도 전력 소모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기와 비교해 고속의 광통신 처리가 가능하려면 반도체 제조업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SK하이닉스(000660)는 광통신을 뒷받침할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자처리를 빛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반도체에 접목할 수 있다면, 반도체 미세화 한계에 가까워지는 와중에 차세대 반도체 판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 평가까지 나온다.

최 회장은 또 △도쿄일렉트론 같은 일본 반도체 장비업계 △일본 낸드플래시업체 키오시아 등 AI와 반도체를 매개로 한 협업 가능성 역시 내비쳤다. 키오시아는 전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 3위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사모펀드를 통해 이 회사에 4조원 가량 지분을 투자했다. 지난해 12월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해 SK하이닉스의 지분가치만 5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 회장은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맞물려 여기에 필요한 HBM 등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AI가 인간의 지시,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는 현재 단계를 넘어 향후 인간 개입 없이 스스로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수준으로 진화하면 AI 반도체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일, EU 수준 경제협력 필요”

최 회장은 아울러 한일 경제 협력을 두고서는 “EU와 같은 통합 수준의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며 “세계 4위 경제권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한국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기로 한 것을 두고서는 “CPTPP 가입도 좋지만 느슨한 경제 연대가 아니라 EU 같은 완전한 경제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PTPP는 일본 등이 주도해 2018년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경제장관회의 등을 열고 CPTPP 가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 회장이 한일 경제 연대를 수년째 주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과 통상질서 변화 속에서 한일 양국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 표준을 만드는 주체(rule setter)가 될 수 있고, 또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각각 세계 10위, 5위 안팎이다. 그런데 단일 경제권으로 묶이면 미국, EU, 중국에 이은 세계 4위권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일본에서도 최근 한일 경제 연대에 동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제는 (양국간 공통 의제로서) 효과적인 연대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와 함께 다음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를 두고서는 “한일 기업인 간에 미래 협력을 논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APEC CEO 서밋 의장을 맡고 있다.

한편 최 회장은 오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투자 서밋’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이날 출국한 이재명 대통령의 3박 5일 방미 일정에 포함됐다.

출처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