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조용하고 미국은 질주한다.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주식시장의 시선이 바뀐 결과다. 코치, 랄프로렌 등 미국의 럭셔리 브랜드의 올해 주가는 두 자릿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유럽의 대형 럭셔리 브랜드 LVMH와 에르메스 등의 주가가 하락세인 것과 대비된다.

희비는 ‘Z세대의 선택’이 갈랐다. Z세대 사이에서는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이 정체성을 잃었고 과소비만 부추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 럭셔리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브랜드 고유의 분위기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어린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한 미국 럭셔리 브랜드가 유럽 브랜드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 미국·유럽, 거꾸로 가는 명품 주가

태피스트리 59.7%, 랄프로렌 33.4%.

올해 주식 상승률이다. 미국의 중가 럭셔리 브랜드 코치를 운영하는 태피스트리의 주가는 올해 초 65달러에 불과했지만 최근 100달러를 돌파한 104.82달러(9월 8일)를 기록했다. 태피스트리는 ‘코치’와 또 다른 미국 기반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 뉴욕’을 보유하고 있다.

230달러에 불과했던 랄프로렌은 최근 300달러를 돌파했다. 9월 8일 장 마감 기준 308.99달러를 기록했다. 랄프로렌은 폴로 랄프로렌, 챕스(캐주얼 브랜드) 등을 운영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이들의 주가 상승률은 더 크다. 태피스트리는 153.86% 상승했으며 170달러대에 불과했던 랄프로렌 주가는 전년 동기 대비 77.9% 올랐다. 지난해 이들 회사의 주가수익률은 60%를 웃돈다.

반면 이들보다 가격대가 더 높은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의 주가는 반대다. 루이비통, 디올 등을 보유한 대형주 LVMH 주가는 올해 21.92% 하락했다. 올해 초 750유로까지 오르던 주가는 2월 들어 하락하기 시작해 최근 500유로 아래로 떨어졌다. 9월 8일 주가는 496.15유로다.

투자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에르메스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올해 2월 2800유로를 돌파했던 주가는 최근 2044유로까지 내려왔다. 2월 고점 대비 28.0% 떨어졌다. 구찌를 운영하는 케링그룹도 같은 기간 280유로에서 238유로로 15% 하락했다.

주가의 변화는 실적의 영향이다. 태피스트리는 2025 회계연도 4분기(3월 29일~6월 28일)에 매출 사상 최고치인 17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8% 증가한 것으로 핵심 브랜드인 코치에서 14% 매출이 늘어난 영향이다. 연간 매출도 사상 최고치인 70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조앤 크레부아세라트 최고경영자(CEO)는 “2025 회계연도는 획기적인 한 해였다”며 “코치 핸드백 매출이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랄프로렌도 2026 회계연도 1분기(4~6월)에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매출 17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은 애널리스트의 추청치를 3.8% 상회했다. 순이익은 2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1% 늘었다. 랄프로렌은 이번 실적 발표와 동시에 연간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당초 낮은 한 자릿수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최근 실적을 기반으로 한 자릿수 중간 이상의 매출 성장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미국의 럭셔리 브랜드는 매출과 주식시장에서 흥행 중”이라며 “비싸고 오래된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사촌(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으로 여겨지던 브랜드들이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보고서를 통해 “지역 경쟁자의 부상은 사치품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인식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 유럽은 외면, 미국은 환영…핵심은 ‘성장성 유무’

‘럭셔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도하게 높아진 가격으로 구매 매력도가 떨어진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는 투자 가치가 떨어지지만 ‘합리적이고 트렌디한’ 이미지의 미국 브랜드는 ‘뉴 명품’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럽 주요 럭셔리 브랜드 주식을 담당하는 UBS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들이 럭셔리 산업의 장기적인 구조적 매력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Z세대의 반응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베인앤드컴퍼니는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약화된 소비자 심리는 기본이며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이어 “점점 더 많은 젊은 소비자들이 럭셔리 제품과의 관계를 재평가하는 중”이라며 “럭셔리 업계의 가격 대비 가치 균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코치와 랄프로렌은 젊은층의 긍정적인 호응을 받는다. 실제 코치와 랄프로렌은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럭셔리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다. 태피스트리는 2분기 기준 150만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680만 명이 새로 유입됐는데 이 가운데 60%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라고 밝혔다. 크레부아세라트 CEO는 “럭셔리 개념을 확대·발전시키는 것도 브랜드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랄프로렌도 Z세대를 확보하며 실적을 개선했다. 올해 2분기 랄프로렌은 140만 명의 DTC(소비자 직접 판매) 고객을 확보했으며 DTC 제품 1개당 평균판매가격(AUR)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여성과 Z세대 소비자가 크게 유입된 결과다.

WSJ는 “유럽 브랜드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빨리 가격을 인상하여 젊은층과 중산층 쇼핑객들이 예산 친화적인 선택을 거의 하지 못하게 했다”며 “자신도 모르게 미국 경쟁사를 도왔을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주식이 이미 고평가 상태라는 점도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LVMH, 에르메스 등은 코로나 시기 보복소비 영향을 받으며 크게 성장했다. 이미 주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실적 개선도 어려워지자 투자 관점에서는 상승 여력이 제한된 종목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들 기업이 이탈하는 고객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연이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부정적인 분위기를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저가 명품’라는 인식 대신 ‘트렌디한 명품’으로 브랜드 이미지 변화와 리포지셔닝에 성공했다.

명품의 큰손으로 불린 중국에서도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 바클레이즈는 “경기침체와 정부 단속 우려 속에서 명품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것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됐다”며 “충성도 높은 구매자 역시 피로도를 느끼고 있으며 웰니스나 새로운 경험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 한경비지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