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잔 속 거품을 과학 장비로 관찰해 겹쳐놓은 모습

맥주 잔 위에 하얗게 올라오는 거품은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전문가에게는 발효가 잘 됐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소비자에게는 맥주의 신선함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어떤 맥주는 거품이 오래 유지되지만 어떤 맥주는 금세 사라진다. 맥주 거품이 어떤 조건에서 안정성을 갖는지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과학자들이 해답을 제시했다. 거품의 수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 발효 방식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얀 페르만트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발효 단계별로 분석하고 맥주 거품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유체역학'에 26일(현지시간) 게재됐다.

맥주 거품은 미세한 공기 방울이 액체막으로 둘러싸여 모여 있는 구조다. 이 얇은 막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거품이 오래 지속된다. 지금까지는 단백질 덩어리나 계면활성제 같은 물질이 표면에서 막을 지탱한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에선 발효 과정의 차이가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실험 결과 단일 발효 맥주는 거품이 주로 표면 점성에 의해 유지됐다. 이와 달리 두 번 이상 발효한 맥주는 점성의 양상이 달랐다. 단백질이 서로 결합해 얇은 막 위에 2차원 구조를 만들었다. 2차원 구조는 일종의 탄성력을 제공해 거품이 훨씬 오래 지속됐다.

특히 세 번 발효한 벨기에 트리펠 맥주는 ‘마랑고니 흐름(Marangoni flow)’이라 불리는 미세한 유체 움직임이 나타났다. 표면에 농도 차이가 생기면서 액체가 스스로 흘러내리지 않고 되돌아가 안정성을 유지하는 원리다. 이같은 순환 흐름 덕분에 거품의 수명은 단일 발효 맥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장됐다.

연구팀은 단백질 성분의 역할도 규명했다. ‘지질전달단백질1(LTP1)’이라는 단백질은 발효 횟수가 늘어날수록 농도가 높아지고 변형 양상도 달라지며 거품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단백질인 ‘Serpin Z4’는 발효 과정보다는 맥아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야르 반응은 단백질과 당이 열에 반응해 갈색 색깔과 고소한 향을 만들어내는 갈변 반응이다. 발효 조건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이 거품의 수명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실제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발효 조건이나 단백질 조성을 조절해 맥주의 거품을 더 오래 유지하거나 반대로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맥주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맥주는 단순한 술을 넘어 거품의 원리를 연구하기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확인된 거품의 원리는 맥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거품은 기름을 분리하거나 불을 끌 때, 혈관 질환 치료에 쓰이는 거품 약물 등 여러 산업과 의료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거품을 오래 유지하거나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