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꿈, 별을 품다

한겨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수천, 수억 년 동안 불을 태우고 있는 듯 보인다. 저 머나먼 별들은 사실 거대한 핵융합로이며, 그 안에서는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소들이 고온·고압 상태에서 융합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하고 있다. 우리 태양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지상에 재현하기 위해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공태양’이라는 이름의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것이 바로 핵융합 에너지다. 기존의 핵분열 기반 원자력 발전이 무거운 원자핵을 쪼개는 방식이라면,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을 결합시키며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원리는 단순하지만 구현은 극도로 어렵다.

그러나 최근, 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기술'이 상용화라는 문턱에 다가서고 있다. 과학자들의 수십 년 집념과 국제 협력, 그리고 인공지능과 소재과학, 초전도 기술의 발전이 이 흐름을 바꾸고 있다.

왜 핵융합인가? – 그 어떤 에너지보다 완벽한 대안

핵융합이 미래 에너지로 각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다. 1g의 수소를 핵융합할 경우 석탄 수천 톤을 태우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를 낼 수 있다. 또한 연료가 되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바닷물과 리튬에서 얻을 수 있어 사실상 무한정 공급이 가능하다.

안전성도 핵심 장점이다. 핵융합은 자체적으로 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기에 폭주하거나 폭발할 가능성이 없다. 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후속 관리 비용과 환경 부담이 매우 낮다. 이 모든 요소는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에너지로서 핵융합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

단 하나의 장애물은 ‘실현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마지막 벽조차 무너지고 있다.

핵융합의 상용화, 어디까지 왔나?

핵융합 기술 개발의 핵심은 "순 에너지 생성"이다. 즉,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2022년 12월,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NIF)는 이른바 ‘에너지 이득(>1)’ 실험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입력 에너지보다 높은 출력 에너지를 얻은 이 실험은 핵융합 상용화를 향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는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서 본격적인 장비 조립이 진행 중이다. 35개국이 참여한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2030년대 초 고온 플라즈마를 실험하고, 이후 상업용 발전 기술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TER 이후에는 DEMO(Demonstration Power Plant)라는 실증발전소가 구축될 예정이며, 이는 본격적인 전력 공급을 상정한 설비다.

한편, 민간 부문에서도 속도가 붙고 있다. Commonwealth Fusion Systems, TAE Technologies, Tokamak Energy, Helion Energy 등 다수의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빠른 주기로 기술을 상용화하고자 민간 자본과 AI, 초전도 자석 기술을 활용한 독자적 핵융합로 개발에 나섰다.

2025~2035년 사이에는 파일럿 규모의 핵융합 발전소가 시범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예측되며, 2040년대에는 상용급 에너지 공급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적 과제와 해법

핵융합 상용화를 가로막은 최대 난관은 바로 플라즈마 제어다. 핵융합은 섭씨 1억 도 이상의 고온 환경에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가두는 것은 큰 기술적 도전이었다. 기존 방식은 도넛 형태의 자석 구조인 ‘토카막(tokamak)’과 ‘스텔러레이터(stellarator)’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온 초전도체의 적용, 인공지능 기반 플라즈마 예측·제어 알고리즘, 재료 과학의 진보 등으로 이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 특히 AI는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핵융합 연구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연료인 삼중수소(tritium)의 공급 및 생산도 이슈였으나, 핵융합로 내부에서 리튬과의 반응을 통해 자가 생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핵융합의 경제성과 산업 파급력

“핵융합은 태양의 힘을 지구에 가져오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핵융합 발전은 탄소배출이 없고, 연료 확보가 용이하며, 발전 단가도 장기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초기 설비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일단 가동이 시작되면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국가 인프라로서의 가치가 크다.

또한 핵융합 산업은 초전도 자석, 고진공 기술, 고성능 센서, 방열소재, 원격 정비 로봇, 고급 제어 시스템 등 다수의 첨단 산업을 동반 성장시킬 수 있다. 향후 30년간 이 산업이 수십조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확장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도 K-STAR(초전도 핵융합 장치)와 ITER 참여를 통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형 핵융합 기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과 민간 연구소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삶에 핵융합이 들어오려면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기술적 불확실성, 사회적 수용성, 투자 지속성, 규제 프레임 등 복합적인 과제가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핵융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장기적 비전’을 요구하는 에너지 혁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술 낙관론’에 빠지기보다는 핵융합의 도전과 기회를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교육과 연구 투자는 물론,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장기적 에너지 전략 속에 핵융합을 안정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핵융합은 단지 발전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문명과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태양의 힘을 손에 쥐게 될 그날, 에너지의 정의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마무리하며

불가능처럼 보였던 핵융합 기술은, 어느새 현실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나아가고 있다. 이 여정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류가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고, 지구를 지키며, 미래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별의 힘으로 우리 삶을 밝혀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