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세계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가 아주 작은 핀테크 스타트업에 사기를 당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3월 말 미국 법원은 학자금 대출 관리 스타트업 '프랭크(Frank)'의 CEO인 찰리 재비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비스는 고객수를 허위로 부풀려 JP모건에 1억 75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받고 회사를 매각한 혐의를 받았다. 이번 판결로 그녀는 최대 3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재비스는 뉴욕 부유층 가정 출신으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금융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학자금 대출 중계 비즈니스모델로 프랭크를 설립했다. 와튼스쿨 인맥을 활용해 유명 벤처캐피털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경제방송 CNBC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고 포브스 30세 미만 젊은 창업가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포브스는 나중에 이 선정을 후회하며 그녀를 '수치의 전당(Hall of Shame)' 명단에 올렸다

2021년 JP모건은 여러 금융사와의 경쟁 끝에 프랭크를 인수했으며, 재비스는 회사를 매각하고 JP모건에 합류해서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인수 1년도 안 돼 JP모건은 프랭크의 고객 정보와 데이터가 조작됐다며 재비스를 증권사기, 부당이득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재판 과정에서 재비스가 직원에게 데이터 조작을 지시했으나 직원이 거부하자, 외부 용역을 맡겨 실제 고객 30만 명을 425만 명으로 부풀린 것이 확인됐다. JP모건은 재비스가 회사를 높은 금액에 매각하기 위해 데이터 과학 교수에게 1만 8000달러를 지불하고, 400만 명이 넘는 가짜 학생 이름을 넘겨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재비스를 전신 사기, 증권 사기, 은행 사기 및 공모 혐의로 기소했으며, 증권거래위원회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재비스는 3월 28일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선고 공판은 8월 26일로 예정되어 있다. 중형이 예상되는 재비스는 선고전까지 발목 감시장치 착용 명령까지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회사의 이름이 '매우 솔직한'이라는 뜻의 프랭크(frank)다.

월스트리트는 프랭크 사례를 '제2의 테라노스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때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차세대 기술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나, 지금은 사기 혐의로 텍사스 형무소에 수감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학 재학 시절 19세의 나이에 아주 간편하게 질병 유무를 알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학교를 중퇴한 후 메디컬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업한 금발의 젊은 미녀 창업가는 투자업계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손가락의 피 한 방울만 있으면 암을 포함한 250여 가지의 질병을 10~20분 만에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도 단지 15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몰리며 기업가치는 9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한순간에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가 된 홈즈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미디어를 누비며 '여자 스티브 잡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하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기술의 실체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끈질긴 탐사 끝에 허구로 밝혀지면서 신화는 무너졌다. 테라노스의 기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기였던 것이다. 무려 12년간을 주주와 언론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회사 직원들까지 속여왔다는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고, 홈즈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쓴 채 3년 전 11년 3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사건의 면면을 뜯어보면 테라노스와 프랭크 사건은 마치 쌍둥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약하면 '명문대 출신 젊은 여성이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끌며 억만장자가 됐지만 알고 보니 사기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언론과 권력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도 닮아 있다. 홈즈와 재비스는 모두 포브스가 주목한 인물로 선정되면서 이름값이 높아졌다. 두 회사 모두 직원들은 회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젊은 여성 CEO는 노련한 사업가 출신 남성 임원의 보좌를 받으며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는 냉정한 판단은 '혁신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기와 질투'로 치부됐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공통점은 제대로 된 실체도 모르는 채 홈즈나 재비스를 뜨겁게 지지하고 투자와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 사회의 거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이 나서서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도 했다.

테라노스의 12년 사기극이 가능했던 이유를 두고 분석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강력한 후광의 힘이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는 것이다. 홈즈는 기술을 증명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내·외부에서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철저하게 무시됐다. 각 분야 리더들이 그녀의 허술한 변명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FDA 승인도 받지 못했고, 의학 분야 투자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미모와 스탠퍼드대'의 조합이 세계적 명성을 가진 수많은 리더들의 눈과 귀를 가린 '합리성'을 만들어냈다. 미모의 일류 대학 여대생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후광효과(Halo Effect)'다. 하나의 두드러진 특성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요소들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인지편향이다. 스위스 IMD 교수인 필 로젠츠바이크는 그의 저서 '헤일로 이펙트(원제: Halo Effect)'에서 전문가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가 후광효과에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JP모건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금융기관이 '젊고 매력적인 성공한 여성 CEO라는 이미지'에 빠져 허우적댔기 때문이다. 허술한 실사 과정이 특히 도마 위에 올랐다. 재비스의 명성과 프레젠테이션에 현혹되어 기본적인 데이터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다. JP모건 내부 직원 일부가 인수 전 데이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묵살되었고, 외부 업체의 심층 검증 제안도 두 차례나 거절당했다. 심지어 프랭크가 보유한 500만 고객을 감안하면 인수금액은 오히려 지나치게 낮은 금액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JP모건은 프랭크 인수를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M&A 최고 전문가인 윔스 모리스에게 프랭크 인수 검토를 맡겼다. 모리스는 개발·제품·소비자·기술·재무·법무 등 JP모건의 다양한 인력을 총동원하여 실사팀을 꾸렸고, 외부 대형 로펌도 참여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막강한 실사팀이 작은 스타트업의 실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한다고 잘못 판단한 이유는 테라노스와 같이 강력한 후광효과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나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창업자의 외모, 학력이나 인맥을 포함하여 수많은 언론의 찬사가 전문가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사를 위해 제출한 자료에 6000개 이상의 학교가 고객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30개밖에 안되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JP모건은 프랭크 웹사이트를 폐쇄했으며, 프랭크 인수 보도자료까지 지웠다. JP모건 CEO이자 월스트리트의 최고 실력자 제이미 다이먼은 프랭크 인수에 대해 "큰 실수였지만, 실패에는 항상 교훈이 남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괜찮다고 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은 역사가 입증해 주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실수 또한 반복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후광효과를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5183786?sid=104